임권택 감독의 1980년대 영화 '복부인' 포스터. /창비

임권택 감독의 영화 ‘복부인’(1980)은 아파트 청약에 당첨돼 큰 돈을 번 주부가 남편을 무시하고 향락을 즐기다가 큰 사기를 당해 쇠고랑을 차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복부인’은 ‘현모양처’와 극단에 있는 존재로, 우리 사회의 경제질서를 어지럽히는 암적인 존재로 여겨져 왔죠. 신기한 것은 ‘복부인’이라는 말은 들어봤어도 ‘복부군(福夫君)’ ‘복낭군’ ‘복남편’ 같은 말을 들어본 적이 없었다는 겁니다.

여성학자 최시현 연세대 국학연구원 학술교수가 쓴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 /창비

“아내가 한 말이라 몰랐다.” 고위공직자의 부동산 투기 의혹이 불거질 때마다 단골로 나오는 변명이기도 하죠. 그런 변명을 들을 때마다 ‘왜 저런 문제가 불거지면 다들 아내 탓을 하는 걸까’ 생각한 적이 있습니다. 여성학자 최시현씨가 2020년 박사학위 논문을 다듬어 낸 책 ‘부동산은 어떻게 여성의 일이 되었나’(창비)가 이러한 의문에 답이 되었습니다. ‘복부인을 위한 변명’이라고도 할 수 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가계부 따박따박 쓰던 ‘알뜰주부’가 1970년대 중만 강남 개발이 이루어지면서 아파트 청약, 공인중개소 등 투기 현장으로 뛰어들게 된 과정을 좇습니다.

[“에미야, 수고했다”… 알뜰 주부는 어쩌다 ‘복부인’이 되었나]

매리언 랭킨이 쓴 '우산의 역사'. /문학수첩

“우산을 갖고 있다는 것은 넉넉한 부(富)를 암시한다. (…) 우산을 들고 다니는 것은 신뢰감의 상징이다. 우산은 누구나 인정하는 사회적 신분의 지표가 되었다.”

‘보물섬’을 쓴 영국 소설가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1850~1894)은 1894년 에세이 ‘우산의 철학’에 이렇게 적었답니다. 법무부의 ‘무릎 꿇고 받들어 우산’ 의전 후폭풍 와중에 영국 칼럼니스트 매리언 랭킨이 쓴 ‘우산의 역사’(문학수첩)라는 책이 출간되었습니다.

고대에 최상류층의 전유물이었던 우산은 19세기 들어 고래수염으로 만들던 우산살이 철골구조로 대체되는 등 보다 대중화되었지만 그래도 중산층이 노동자 계급과 자신들이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상징물로 사용되었다고 하네요. 중절모와 함께 영국인의 드레스 코드로 자리잡기도 했지만, 거추장스럽고 덩치가 큰 까닭에 ‘보기 흉한 물건’의 대명사처럼 여겨지기도 했습니다.

우산은 생존 도구이기도 했습니다. 1719년 출간된 대니얼 디포 소설 ‘로빈슨 크루소’에서 무인도에 조난당한 로빈슨 크루소는 생존에 도움이 되는 다양한 장치를 만드는데 그 중 하나가 비와 햇볕을 가릴 우산이었습니다. 그가 짐승 가죽으로 우산을 만들려 분투하는 장면이 독자들에게 큰 인상을 남기면서 한동안 ‘로빈슨’이 우산을 상징하는 단어가 되기도 했다고 하네요.

지난주엔 비가 제법 거세게 내렸죠. 우산을 놓고 출근한 날엔 비가 쏟아지더니 막상 갖고 간 날엔 하늘만 흐릴 뿐 비가 오지 않더군요. 스티븐슨은 또 이렇게 썼다네요. “우산이 지닌 가장 기이하고도 중요한 속성은 대기층에 영향을 미치는 막대한 에너지다. 우리가 우산을 들고 나가면 공기가 메마르고, 집에 두고 나오면 엄청난 양의 수증기가 형성되면서 비가 내리곤 한다.” 이번주에도 비소식이 몇 번 있네요. 우산 잘 챙겨 나가시길 빕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