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5일로 스티브 잡스가 세상을 떠난 지 꼭 10년이 됐다. 그의 공식 전기를 집필한 월터 아이작슨은 ‘10년이 지나고 나니 더 명료하게 이해할 수 있게 됐다’며 후기를 썼다. 국내 출판사인 민음사에서 그 글을 포함한 960쪽짜리 ‘스티브 잡스’ 특별 증보판을 냈는데, 저작권사의 허가를 받아 한정 수량만 제작했다고 한다.
이 특별 증보판은 최신 아이폰의 세 가지 인기 색상을 적용한 보관용 케이스에 담겨 온다. 보고 있자니 ‘참 예쁘게 잘 만들었다’는 감탄과 함께, 묘한 생각이 든다. 정작 이 전기는 잡스가 만든 물건들과 매우 다르다는 거다. 두께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들었나 보다. 애플 제품에는 모두 최대한 얇아지려는 의지가 깃들어 있는데, 이 책은 그렇지 않다.
이 전기의 저술 과정에는 어떤 혁신도 없다. 반대로 놀랍도록 정석 그 자체다. 잡스를 포함해 수많은 업계 거물을 충실히 인터뷰하고 내용을 정리했다. 잡스는 제품을 과감히 규정하고 많은 것을 대담하게 버렸지만 책은 그렇지 않다(선택과 집중, 그리고 센세이션이라는 면에서 대니 보일의 영화 ‘스티브 잡스’야말로 애플 제품을 닮았다).
그렇게 애플 제품과 다른 점이 바로 이 전기의 뛰어난 점이다. 잡스는 누구인가? 저자의 평가는 퍽 조심스럽다. 이후에 쓴 ‘레오나르도 다빈치’(아르테) 같은 책과 비교하면 그 신중함이 더 두드러진다. 아주 매력적인 모순 덩어리죠? 여러분은 어떻게 소화하시겠습니까? 그렇게 묻는 것 같다.
내가 이해하는 잡스는 본받을 만한 인물은 아니다. 아이폰이 소아마비 백신이나 허리와 함께 가슴까지 감쌀 수 있는 3점식 안전벨트에 견줄 수 있는 발명 같지도 않다. 하지만 잡스의 일대기는 흥분을 불러일으킨다. 모든 시스템이 촘촘해지고 개인은 왜소해지는 시대에, 그는 우리가 꾸는 꿈이다. 홀로 운명에 맞서 기어이 자기 뜻대로 세상을 바꾸는 사람.
웃기는 이야기는 덤덤하게, 무거운 이야기는 가볍게. 내가 믿는 스토리텔링의 철칙이다. 독자를 흥분시키는 이야기는 차분하게 써야 한다. 바로 그렇게 잘 쓴 책이고, 나는 애플 제품보다 이 전기에 더 흥분한다. 장강명·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