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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언 레슬리 지음|엄윤미 옮김|어크로스|396쪽|1만6800원
이 책은 갈등을 예찬한다. 적절히 통제된 의견 대립은 인류를 더 나은 방향으로 안내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에서 시작해 위키피디아 편집으로, 부부 싸움과 스타트업의 의사 결정 등 여러 사례를 들며 갈등의 순기능을 조명한다. 영국 왕립예술학회(RSA) 회원으로 조직 문화 컨설턴트인 저자는 이 책에서 ‘교착상태와 악다구니에 빠지지 않고’ 의견 대립을 조율해 나가야 할 필요성을 역설한다.
◇비행기와 DNA의 공통점은 ‘갈등’
비행기를 발명한 라이트 형제, DNA 이중나선 구조를 처음으로 제안하며 이후 노벨상을 받는 과학자 크릭과 왓슨, 그리고 밴드 비틀스에는 공통점이 있다. 이들은 최종 결과물을 내놓기 전까지 무수히 논쟁했다. 저자는 직설화법으로 갈등을 벌이는 부부가 시간이 흐르자 갈등을 회피했던 부부보다 더 행복한 결혼생활을 한다는 연구도 인용한다. 스타트업에서도 공동 창업자 사이에 적당한 갈등이 있어야 성과가 더 높았다는 컨설팅 경험을 털어놓는다. “창업자 간 대립이 없는 스타트업은 무너진다.”
갈등은 인간의 본성이다. 인간은 자신이 믿는 것을 지지하는 정보만 선별하는 ‘확증 편향’이 있다. 의견 대립은 생길 수밖에 없고, 설득은 불가능할 때가 잦다. 사람은 갈등 상황에서 상대방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그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언쟁이 벌어져 ‘진정하라’고 했을 때 진정하는 사람을 봤는가. 저자는 이런 이유로 갈등을 피하기보다는, 활용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놓는다.
“자기 중심적인 주장을 펴려는 인간의 성향을 가장 잘 활용하는 방법은 그 성향에 힘을 싣는 것이다.” 각기 다른 편향에 사로잡힌 사람들이 논쟁을 벌이면서 논리의 사각지대를 발견하고 놓친 팩트를 챙겨야 효율적이라는 것이다. 그는 위키피디아 항목의 품질과 편집자의 정치 성향을 분석한 2019년 연구를 제시한다. 민주당 성향과 공화당 성향 작성자가 모두 많아 ‘양극화’된 항목이 가장 질이 높았다. 공화당만 있을 때, 민주당만 있을 때보다 더 많은 논쟁을 벌어졌기 때문이다. 토론을 통해 사실관계는 명확해졌고, 논거도 다듬어진 결과물이 나왔다고 한다.
흔히 토론에 앞서 ‘나쁜 의견이란 없다’ ‘열린 마음이 필요하다’ 같은 말을 하는 통념도 반박한다. 상대방 의견을 존중한다는 이유로 제대로 된 토론이 벌어지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의 처방은 정반대다. “다른 사람 의견만큼이나 자신의 관점도 강하게 존중해야 한다.”
대립하는 의견을 맞부딪쳐 허점을 파악하고 논리를 가다듬어야 하는 상황에서 ‘예스맨’은 도움이 안 된다고도 지적한다. 물론 전제가 있다. 토론자들이 ‘논쟁에서 이기겠다’는 너무나도 인간적인 마음이 아니라, ‘조직·사회·가정·회사·국가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는 뭘 해야 하나’라는 의도에서 출발해야 한다.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보다 ‘어떻게 하면 이 의견 대립이 의미 있는 것이 될 수 있을까’로 생각을 바꿔야 한다.
◇현대사회는 ‘논쟁 빈곤’ 상태
갈등의 순기능을 찬양하는 그에게, 현대사회는 논쟁이 부족한 공간이다. 흔히 소셜미디어로 인해 사람들은 갈등에 노출돼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제대로 된 의견 교환은 없다. 저자는 “소셜미디어는 싸움이 아닌 도피의 공간”이라며 “싸우는 것처럼 연막을 치며 외부 집단에 대한 분노를 공유하고 결속을 다질 뿐”이라고 한다. ‘남초’ ‘여초’ 커뮤니티, 특정 정당 지지층이 모이는 커뮤니티는 그 결과물이다. 생산적인 논쟁은 이뤄지지 않는다.
책은 말미에 생산적인 대화를 위한 핵심 원칙과 생각법을 요약해서 제시한다. “강요하지 말 것. 선택지를 줄 것. 상대방을 기분 좋게 할 것.” 저자는 넬슨 만델라를 모범 사례로 제시한다. 만델라는 자칫 민주 선거가 무산되고, 흑백이 서로 인종 학살에 나설 상황에서 아프리카너(아프리카 태생 백인) 거두인 콘스탄드 빌욘 장군과 대화에 나선다. 만델라는 백인들의 언어인 아프리칸스어로 회담에 임했다. 국가 교체 논쟁에 대해서는 ‘백인이 원하는 노래와 흑인이 원하는 노래 두 곡을 차례로 연주하자’고 타협안을 내놓는다. 빌욘과 백인들은 남아공에서 민주 선거를 용인했고, 무장 봉기는 없었다.
만델라가 요즘 인터넷에서 논쟁하듯이 빌욘에게 말했다면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저자는 이렇게 썼다. “만델라는 피 묻은 손의 백인 우월주의자라고 빌욘을 공격했을 것이다. 민주 선거를 무조건 받아들이라고 공격적인 말투로 말했을 것이다. 만델라의 모든 행동은 완벽하게 정당화됐을 것이다. 그러나 (무력 봉기를 고려하던) 빌욘은 어떻게 반응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