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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의 맛

아르투르 시자르-에를라흐 지음|김승진 옮김|마티|448쪽|1만8000원

‘나무의 맛’이라는 책 제목에 어리둥절할지도 모르겠지만, 우리는 이미 나무를 맛보고 있다. 대표적인 예가 감자튀김, 떡볶이에까지 사용되며 대유행 중인 트러플(송로 버섯)이다.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도 언급할 정도로 역사가 오래된 식재료다. 고대 그리스 사람들은 트러플이 번개와 천둥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여겼지만, 음식 평론가인 저자는 “특정한 나무 종(種)과 체외공생하며 나무로부터 양분을 얻는 버섯균으로, 나무의 종류가 맛과 향에 영향을 미친다”고 설명한다. 1g당 321달러나 하는 알바 화이트 트러플은 오크(참나무), 포플러, 느릅나무, 버드나무, 린덴나무(피나무)에서만 자란다. 나무에 따라 트러플 맛이 달라질까? 포플러, 린덴, 버드나무에서 자라는 트러플은 색이 밝고 맛이 섬세하다. 계란이나 퐁듀 요리에 잘 어울린다. 오크나 느릅나무에서 자라는 것은 색이 짙고 맛이 강렬하며 오래간다. 고기 요리와 궁합이 좋다.

상록수림 우거진 오스트리아 북부 지방에서 자라 숲 생태학을 전공한 저자는 이탈리아에서 미식학 석사 과정을 밟던 중 ‘우리의 음식 속에도 나무가 존재할까?’ ‘만약 존재한다면 나무의 맛이란 어떤 것일까?’라는 궁금증을 갖게 된다. 그 해답을 찾기 위해 3년간 유럽, 캐나다, 인도, 베트남 등 세계 각지를 누비며 ‘나무 음식 탐험’에 나선다.

오크 통이 가득 쌓인 양조장에서 위스키의 빛깔을 살피고 있는 감식가. 나무통 숙성을 거치지 않은 위스키는 무색 투명하지만, 오크통에서 숙성되면 반투명 구리색이나 호박색으로 변한다. /게티이미지 코리아

위스키 맛의 70%는 나무가 좌우한다. 저자는 “위스키를 숙성시키는 오크통이 재료, 기법, 제조 과정을 다 합한 것보다 위스키 맛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고 말한다. 핵심적인 요소 중 하나가 오크의 국적이다. 위스키 업계는 보통 프랑스산이나 미국산 화이트 오크로 만든 통을 선호한다. 미국산은 바닐라 향을 내고, 프랑스산은 초콜릿 향을 내는데, 모두 대부분의 사람이 좋아하는 향이기 때문이다. 저자의 고향인 오스트리아산 오크는 미국산과 비슷하지만 덜 공격적이고 더 둥글둥글한 맛을 낸다. 많은 이들이 통에서 오래 숙성한 위스키가 더 좋은 위스키라고 생각하지만, 숙성이 너무 오래돼 나무 맛이 지나치게 많이 들어가면 맛을 망칠 수도 있다.

팬케이크에 뿌려 먹는 메이플 시럽은 설탕단풍나무 수액을 채취해 만든다. 단풍나무 수액을 처음 먹기 시작한 아메리카 대륙 원주민들은 나무가 겨울잠에서 깨 수액이 흐르기 시작하는 3월에서 4월 사이 뜨는 달을 ‘슈거 문(sugar moon)’이라 부른다. 채취한 수액은 증발기를 거쳐 당분을 캐러멜화하고 체에 거르는 과정을 거쳐 시럽이 된다. 평균적으로 수액 38L에서 1L가량의 시럽을 생산할 수 있다. 시럽의 맛은 채취 시기, 단풍나무 품종, 생산자 등에 따라 달라진다. 눈이 채 녹지 않은 시즌 초기엔 부드럽고 상쾌한 꽃향기가 난다. 봄이 무르익은 시즌 막바지엔 새싹이 성장하면 수액에 다양한 아미노산이 증가하므로 버터 맛과 함께 풀내 나는 쓴맛이 돈다.

낙엽이 떨어지기 전, 숲의 향취를 만끽하라고 등을 떠미는 것 같은 책. 저자는 나폴리 유명 피자집을 찾아 너도밤나무 장작을 사용해 피자를 구우면 비엔나소시지 같은 풍미를 낸다는 걸 밝혀낸다. 독일의 피클 제조장에선 체리 잎을 넣고 피클을 만들면 타닌 성분이 아삭함을 더해준다는 걸 알아내기도 한다. 모든 탐험이 마무리되었을 때, 저자는 소나무 껍질 가루를 넣어 쿠키를 굽고 너도밤나무 톱밥을 넣어 롤빵을 만든다. 오크통에서 숙성한 화이트 와인을 곁들여 친구들과 ‘나무 요리 파티’를 연다. 나무의 맛에 대한 자각은 생태계 보존에 대한 각성으로 이어진다. “나무가 우리 주위의 모든 곳에서 더 많아지고 번성해야만, 그리고 자연적인 재생 속도를 넘어서는 정도로는 사용되지 말아야만, 지속 가능하고 맛있는 나무의 미래가 올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