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음식문화사
우어줄라 하인첼만 지음|김후 옮김|니케북스|660쪽|3만2000원
“독일 음식? 소시지 말고 뭐 있나?” 하는 사람들에게, 이 책은 제목으로 우선 받아친다. 원제 ‘Beyond Bratwurst’는 ‘소시지 구이 너머’라는 뜻. 음식문화 연구자인 저자는 단언한다. “음식과 독일의 조합이라고 하면 대다수는 맥주나 소시지, 프레첼이나 림버거 치즈 정도를 생각한다. 그러나 현재 독일의 8200만 인구 모두가 옥토버페스트에만 목을 매고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은 신석기 시대와 로마시대, 중세를 거쳐 근대와 현대의 식탁에 이르기까지 독일 음식의 역사와 문화의 복잡성에 초점을 맞춘다.
독일의 전통적인 크리스마스 케이크로, 우리나라에서도 겨울이면 유행하는 ‘슈톨렌’의 역사는 음식에 대한 종교적 규칙, 죄악과 탐닉에 관련된 논쟁을 담고 있다. 버터가 잔뜩 들어가고 아몬드와 말린 과일을 넣는 이 음식은 당초 성탄절 이전의 대림절 단식 기간에 먹는 케이크를 기원으로 한다. 아기 예수를 쌌던 강보 형태의 슈톨렌은 1392년 처음으로 기록에 등장한다. 가톨릭의 금식일 규칙이 철저히 지켜지던 그 즈음에는 물과 귀리, 현지에서 생산된 카놀라유를 넣는 것만 허용되었다. 육류, 달걀, 유지방은 폭식 및 호색의 악덕과 연관된 것으로 여겨져 금지되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15세기 중반 이후 전 유럽에서 금식법에 대한 관면(寬免·교회법 준수 의무를 면제해주는 일)이 일반적으로 행해졌다. 주된 근거는 날씨가 추워 올리브 재배가 힘든 북부 유럽에서 동물성 지방인 버터나 라드 대신 식물성 올리브유를 사용하는 것이 너무 비싸다는 것이었다. “훌륭한 기독교인의 의무란 극단적인 금식보다는 신이 창조한 모든 것에 온건함을 보이는 것”이라 주장한 루터의 종교개혁이 슈톨렌의 재료를 더욱 풍성하게 만들었다. 단식 기간에 먹는 소박한 음식이었던 슈톨렌은 이런 과정을 거쳐 점차 달고 기름진 간식으로 변모했다.
기근과 빈곤도 나름의 식문화를 만들어냈다. 식량 생산이 인구 증가 속도에 미치지 못하고 재앙 수준의 혹한이 지속됐던 19세기, 독일 사회엔 혁명의 기운이 감돌았다. 저자는 “굶주린 국민들이 1789년의 프랑스인들처럼 폭력을 수반한 저항이라는 마지막 수단에 의존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놀랍다”고 말한다. 그는 감자로 만든 값싼 증류주 ‘슈납스’가 노동자들 사이에서 유행한 것이 요인이라 주장한다. “노동자들을 늘 깨어있게 하고 허기뿐만 아니라 무력감이나 분노까지 잊게 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극도로 빈곤했던 슐레지엔의 가내 방직공들이 값비싼 커피에 설탕을 듬뿍 넣어 마실 수 있었다는 사실도 마찬가지 결과를 낳았다. “이들이 생산한 옷감이 중앙아메리카의 커피와 거래되었고, 그 원두가 임금 대신 방직공들에게 지급되었기 때문이다.”
인구 과잉은 독일 음식의 세계화에도 기여했다.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미국으로 떠난 독일 이주민들의 음식은 “애플파이처럼 미국화되었다.” 저온에서 숙성하는 독일식 라거 맥주는 이전까지 주를 이루던 영국식 에일 맥주보다 더 신선해 인기를 누렸다. 독일식 양배추 김치 ‘자우어크라우트’는 미국에서 맥주와 함께 ‘독일적인 것’과 동의어가 되었다. 케첩으로 유명한 독일계 이민자 헨리 존 하인즈는 1890년대 롱아일랜드에 자우어크라우트 공장을 세웠다. 떠돌이 장사꾼들이 회의장과 바 등을 돌아다니며 감자샐러드와 자우어크라우트, 프랑크푸르트 소시지 등을 팔았다.
풍부한 사료를 바탕으로 매끄럽고 정교하게 쓴 책이다. 맥주는 짠 음식을 많이 먹던 북부 독일에서 선호하던 음료이고,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요리책의 유행을 부추겼으며, 소박한 독일 음식의 전형처럼 여겨지는 통밀빵이 나치 선전 정책의 결과물이라는 이야기 등을 읽다 보면 “독일인은 오직 생존을 위해서만 먹는다”는 편견이 얼마나 진부한 것인지를 깨닫게 된다. 2차 대전 직후 굶주리던 독일 어린이들이 미군에게 남은 음식, 사탕, 껌 등을 구걸했다”는 대목에선 6·25 직후 우리 사회 풍경이 겹쳐지기도 한다. 유명 제과점들이 다음 달 성탄을 앞두고 슈톨렌 예약을 속속 받고 있다. “당신이 먹는 것이 곧 당신(You are what you eat)”이라는 말이 진실이라면 독일인과 우리는 크게 멀지 않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