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렌즈|로빈 던바 지음|안진이 옮김|어크로스|584쪽|2만2000원
“괜찮다.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다.”
곽경택 감독 영화 ‘친구’의 명대사 중 하나. 친구란 정말 서로 ‘미안한 것 없는’ 존재일까? 우리와 관계 맺는 수많은 사람들 중 어디까지를 ‘친구’라 부를 수 있을까? 진화인류학자인 로빈 던바(75) 옥스퍼드대 교수는 ‘친구’를 이렇게 정의한다.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기 위해 앉아 있다가 우연히 만났을 때 그냥 보내지 않고 옆에 앉히고 싶은 사람.” 던바 교수에 따르면 한 사람이 안정적으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 ‘친구’의 수는 최대 150명이다. 그는 1992년 인간의 뇌는 사회적 정보를 처리하기 위해 발달해 왔으므로 뇌의 크기와 용량으로 인간관계를 예측할 수 있다는 ‘사회적 뇌 가설’을 발표하면서 150명 이론을 제시했다. 그래서 150은 ‘던바의 수(Dunbar’s Number)’라 불린다.
던바는 인간관계를 ‘우정의 원’이라는 동심원 그래프로 설명한다. “기대어 울 수 있는” ‘절친’의 범위는 최대 5명까지다. “죽는다면 진짜로 슬플 것 같은” ‘친한 친구’의 범위는 15명까지다. 50명까지는 ‘좋은 친구’로 파티에 부를 만한 사람들을 칭하고, ‘친구’인 150명까지는 결혼식 하객으로 초청할 만한 사람이다. 인간은 ‘친구’라 정의할 수 있는 150명까지를 도와줄 때는 보상을 바라지 않지만 150명 이후의 사람들에겐 ‘나중에 호의를 되돌려 달라’고 기대한다.
‘150명? 말도 안 돼! 내 페이스북 친구만 해도 500명인데?’ 소셜미디어 시대가 도래하고 ‘친구’의 개념이 확장되면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그러나 여러 연구에 따르면 ‘셀레브리티’가 아닌 평범한 사람의 온라인 친구는 평균 최대 169명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일상적인 대면 세계에서 만나는 친구와 온라인 친구 수가 엇비슷하다. 스웨덴의 한 유명 TV 프로그램 진행자가 페이스북 ‘친구’를 불쑥 찾아가는 실험을 했더니, 그를 반겨준 사람은 원래 알던 사람들이었다. 이외의 사람들은 불편해하거나 화를 내기도 했다.
“친구가 많을수록 덜 아프고 더 오래 산다”는 연구 결과는 우정에 관한 연구 중 가장 빛나는 과학적 성취다. 미국 브리검 영 대학 연구진이 30만 명을 표본으로 조사한 결과 연구 대상자들의 생존율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친 것은 사교 활동 수치였다. 또 다른 연구에 따르면 만 6세 때 사회적 연계가 좋았던 아이들은 30대 초반에도 혈압과 체질량 지수가 낮았다. 어린 시절의 사회적 참여가 성인이 되고 나서도 오랜 시간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다.
던바는 소셜미디어 시대의 인간관계에 대해 우려를 표한다. 우정을 유지하려면 직접 만나 친구의 웃음소리를 듣고, 그를 만지고, 대화에 몰입하는 등의 상호작용을 통한 끊임없는 ‘강화’가 필요한데 소셜미디어 접촉은 우정이 식어가는 속도를 다소 늦춰줄 뿐이라는 것이다. 온라인에서의 관계가 집단 상호작용이 아니라 1:1에 그치며, 상대와 문제가 생겼을 때 타협하기보다는 접속을 끊어버리는 방식으로 해결한다는 점에서 대면에 서투른 젊은 세대를 걱정하기도 한다. “이런 식이라면 그들의 사교술은 발달하지 못할 것이고, 그 결과 감당할 수 있는 사회적 네트워크의 크기는 작아질 것이다. 거절, 공격, 실패를 다루는 데도 서툴 것이다.” 던바에 따르면 전화, 화상통화, 메신저, 문자메시지, 이메일 중 화상통화를 통한 상호작용만이 대면 못지않게 만족도가 높았다.
우정에 대한 여러 실험 중 팬데믹 시대의 우리가 가장 유념해야 할 것은, 친구의 수와 면역반응이 비례한다는 카네기 멜런 대학의 연구 결과일 것이다. 연구진은 대학 신입생들이 고독감을 느낄 때 독감 예방접종 후의 면역반응이 감소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친구가 4~12명인 그룹은 13~20명인 그룹보다 면역반응이 약했다. 친구란 ‘사회적 백신’이기도 한 셈이다. 그러니 전염병과 거리 두기에 굴하지 말고 당장 생각나는 친구에게 영상통화를 걸자. 웃고 떠들며 안부를 묻자. “우리, 친구 아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