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친구 포스터

“괜찮다. 친구끼리 미안한 거 없다.”

곽경택 감독의 영화 ‘친구’의 명대사 중 하나입니다. ‘친구’란 정말 서로 미안한 것 없는 존재일까요? 우리가 ‘친구’라 부를 수 있는 범위는 어디까지일까요?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친구는 최대 몇 명까지일까요?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 옥스퍼드대 교수의 책 ‘프렌즈’(어크로스)는 이에 대한 답을 알려줍니다. 던바 교수는 1992년, 영장류의 사회집단 크기는 뇌의 크기에 비례한다는 ‘사회적 뇌 가설’에 따라, 한 사람이 가질 수 있는 친구의 최대치가 150명이라는 연구 결과를 도출해냈지요. 그리하여 150이라는 숫자에 ‘던바의 수(數)’라는 이름이 붙었고, 던바도 덩달아 유명세를 타게 되었습니다.

프렌즈

지난해 미국서 출간된 신간 ‘프렌즈’에서 던바는 친구를 “공항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다가 우연히 만났을 때 그냥 보내지 않고 옆에 앉혀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사람”이라 정의합니다. 그럴 수 있는 사람이 최대 150명이라는 것이지요. 그렇지만 힘들 때 기대 울 수 있는 ‘절친’은 최대 5명이랍니다. 5명도 많은 것 같지만 이 5명에는 가족, 친지가 포함되기 때문에 따지고 보면 마음을 터놓고 눈물을 보일 수 있는 사람은 세상에 정말 드물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소셜미디어의 발달로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친구’를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실제로 평균을 내 보면 온라인상의 친구 수는 대면으로 만나는 친구 수와 엇비슷하다네요. 던바는 말합니다. 우정이란 혈연관계 보다 약해서 끊임없는 강화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친구를 잃고 싶지 않다면 종종 만나서 이야기 나누고 , 웃고, 스킨십을 하라고요. 코로나가 가져온 비대면의 시대에, 우리가 잃고 있는 건 무엇인가, 생각해 보게 되었습니다.

[힘들 때 기대어 울 수 있는 ‘절친’은 몇명일까요]

서평지 ‘서울 리뷰 오브 북스’에 실린 소설가 김연수의 산문 ‘지저분하게 책 읽기를 권함’을 읽다가 이 구절에 밑줄을 그었습니다. 김연수 작가는 누군가 완독한 책만 판매하는 서점을 차리기길 꿈꾸는데, 책을 구비하는 기준을 읽은 흔적이 얼마나 많이 남았느냐로 삼고 싶다고 하네요.

‘헌책방’이 사라지고 ‘중고책방’이 횡행하는 시대, 김 작가는 “중고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거기 서가에 꽂힌 책들이 낡은 책이 아니라 재판매할 수 있을 정도로 깨끗한 책이라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인 것 같았다”고 말합니다. 실제로 중고책방에서는 ‘새것에 가까운’ 책을 가장 비싸게 쳐주지요.

청계천 헌책방거리.

과거에 ‘헌책’을 구입하는 묘미 중 하나는 먼저 읽은 이의 흔적을 통해 그 책이 얼마나 사랑받았는가를 짐작하는 일이었습니다. 밑줄, 메모, 속표지의 헌사. 책을 귀히 여기는 마음이 수많은 자취를 남기는 일과 동의어라 여기던 때가 있었죠. ‘지저분하게’ 읽는다는 것은 그 책을 영원히 소장하겠다는 의지의 표명이기도 할 테니까요. 앞서 읽은 이의 밑줄이 같은 책을 읽는다는 연대감을 안겨주던, ‘지저분한 헌책’의 시대가 그립습니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