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는다는 착각|엘렌 랭어 지음|변용란 옮김|유노북스|356쪽|1만7000원

노화로 고통받는 많은 사람들이 전래동화 속 노인처럼 ‘젊어지는 샘물’을 마시고 세월을 거꾸로 돌리고 싶다고 생각한다. 실현 불가능한 소망인 것 같지만 하버드대 심리학과 교수인 엘렌 랭어(75)는 단지 동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라고 말한다. 노화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것은 사고 방식과 마음가짐이므로, 노인에 대한 고정관념에서 벗어나 젊게 살면 실제로 신체적인 노화도 지연된다고 주장한다. 이 책의 원제가 ‘Counterclockwise(시곗바늘 거꾸로 돌리기)’인 것은 그 때문이다.

랭어 교수는 자신이 1979년 외딴 시골 수도원에서 75~89세 노인들을 놓고 진행한 실험 이야기부터 한다. 그는 수도원 환경을 IBM 컴퓨터가 방 전체를 차지할 만큼 크고, 팬티스타킹이 미국 여성들에게 막 알려진 1959년으로 되돌렸다. 노인들에게 일주일간 20년 전의 본인으로 돌아가 생활해 달라고 주문했다. 미국 최초의 인공위성인 익스플로러 1호 발사, 피델 카스트로의 아바나 진격 등 1959년의 사건에 대해 이야기하되 과거시제가 아니라 현재시제를 사용하도록 했다. 일주일이 다 지나기도 전에 노인들의 행동은 물론 태도까지 변했다. 면접을 보러 처음 하버드대를 찾았을 땐 당시 데려다 준 친지들에게 극단적으로 의존하던 노인들이 수도원 도착 직후부터 모두 독립적으로 행동했다. 일주일 후엔 모두 청력과 기억력, 악력이 향상되었으며 관절 유연성과 손놀림이 월등히 나아졌다. 키⋅몸무게⋅걸음걸이⋅자세도 좋아졌다. 이 연구가 세계적으로 주목받으며 랭어 교수는 일약 심리학계의 스타로 떠올랐다.

책에서 랭어는 이 실험의 연장선상에서 이후 진행한 여러 실험 결과를 토대로 같은 맥락의 주장을 펼친다. 그는 “우리의 발목을 잡는 건 신체가 아니라 신체적인 한계를 믿는 사고 방식”이라며 “노인에 대한 편견을 거두고 과보호를 멈추면서 삶에 대한 통제력을 갖도록 하면 덜 늙는다”고 말한다. 이를테면 연로한 부모를 무기력한 아기 취급하며 보청기를 낄지 말지 자녀가 결정하거나, 병원에서 부모는 소외시키고 자녀와 의사만이 부모의 상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일 등을 지양해야 한다는 것이다.

“나이는 숫자일 뿐”이라며 신체적 나이에 굴복하지 않고 삶을 즐기는 노인들. 저자는“실험 결과 삶의 중요한 결정을 스스로 내리며 적극적이고 진취적으로 생활해 온 노인들의 사망률이 그렇지 못한 대조군의 절반도 안 될 만큼 낮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랭어는 “의학의 효용을 부정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나치게 의학적인 관점에서 건강을 바라보는 것도 문제”라 지적한다. “슬픔을 경험하는 일은 드문 대신 자주 우울해한다. 밤에 고민하느라 ‘꼭 필요한’ 8시간 수면을 지키지 못하면 스스로를 불면증 환자라 칭한다. (…) 왜 자신에게 그러한 이름표를 붙이는 것을 정당하다고 여기며, 그 대가는 무엇일까? 우리는 무의식적으로 건강한 경험을 의학적인 행위로 바꾸어 왔다. 도전이나 어려움은 질병이 되고, 감각은 증상이 된다. 우리는 각자의 경험을 상당수 병적인 상태로 귀결 지으면서 그에 대한 이해를 제한하고, 병적인 상태가 적정 수준 이상으로 우리 삶에 영향을 미친다고 여긴다.” 노화를 좀 더 긍정적으로 바라보던 이들이 부정적인 이들보다 평균 7년 반을 더 산다는 연구 결과도 덧붙인다.

심리학자이자 시카고대 교수를 지낸 버니스 뉴가튼은 “사람들이 ‘사회적 시계’에 크게 영향을 받으며 특정한 행동이나 태도에 어울리는 ‘올바른 나이’가 있다는 암묵적인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평가한다”고 주장했다. 랭어는 이를 근거로 질문한다. “만일 우리의 삶이 다른 연령대 집단의 삶과 유사하다면 우리는 그 연령대 사람들처럼 나이를 먹을까, 아니면 원래 연령대 사람들에 가깝게 나이를 먹을까?” 그는 훨씬 어린 배우자와 결혼한 여자들은 평균수명보다 오래 사는 반면 나이가 훨씬 많은 배우자와 결혼한 여자들은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죽는다는 사실을 연구에서 확인했다(남자도 비슷했다). 고령 출산은 건강에 나쁘다고 일반적으로 알려져 있지만, 실제로는 늦은 나이에 출산한 엄마들이 일찍 출산한 엄마들보다 평균수명이 더 길었다. 스스로 ‘사회적 시계’를 어느 집단에 맞추느냐가 수명에 영향을 미친 것이다.

‘또 한 살 더 먹었다’며 한숨 쉬는 당신에게 희망을 안겨줄 책이다. 저자는 “노화는 변화를 의미하지만 변화가 퇴화를 의미하지는 않는다”며 “‘나이 듦에 대한 신호’를 줄이고 노년을 사전 자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한다. 스스로를 지레 나이의 감옥에 가둔 채 ‘노인다운’ 옷을 입고 ‘노인처럼’ 행동할 필요는 없다는 이야기다. 랭어는 과거 ‘심리학계의 떠오르는 별’로 불리며 1981년 여성 최초로 하버드대학교 심리학과 종신교수직에 임용된 원로 학자. 이번 주 함께 소개한 현(現) ‘영국 심리학계의 라이징 스타’ 스튜어트 리치의 ‘사이언스 픽션’과 비교해가며 읽으면 흥미진진하면서도 지적 자극을 주는 경험이 될 것이다. “의학(과학)은 해답의 집약체가 아니다”라며 “나이 먹어 생기는 자연스러운 변화를 모두 병증(病症)으로 규정하는 것은 과하다”는 랭어의 말은 “우리가 과학적이라고 믿는 사실이 모두 진실은 아니다”라는 리치의 주장과도 상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