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편 편향
키스 E. 스타노비치 지음|김홍옥 옮김|바다출판사|382쪽|1만7800원
“우리는 탈진실 사회가 아니라 우리 편 편향 사회에서 살고 있다.”
200여 편의 논문을 내놓은 베테랑 인지심리학자인 스타노비치 토론토대 명예교수는 단언한다. 진실과 사실은 여전히 소중한 가치라고 믿지만, 우리 편 편향(myside bias)에 빠지면 “진실과 사실이 우리의 견해를 지지해줄 때에만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게 된다는 주장이다. 우리 편 편향은 자신의 기존 신념·견해·태도에 편향된 방식으로 증거를 평가·생성하고 가설을 검증하는 현상이다.
우리 편 편향이 문제임은 심리학자의 책을 읽지 않아도 알 수 있다. 각국 정치판만 보면 단박에 알 수 있다. 그러나 책은 우리 편 편향의 흥미로운 특징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교육과 지적 수준이 높을수록 확증 편향, 신념 편향, 기준점 편향 등의 다양한 편향을 잘 극복해낸다는 것은 심리학계의 정설이다. 그런데 우리 편 편향 앞에서는 배운 사람이나 못 배운 사람이나 똑같이 취약하다고 저자는 지적한다. 그는 한술 더 떠서 ‘유독 지식인에게 보이는 편향’이라고 한다.
실험 결과 우리 편 편향은 지적 능력과 상관없이 보편적으로 나타났다. 지식인은 일반적으로 높은 교육수준과 지능 덕분에 덜 편향적이다. 그래서 자신이 우리 편 편향에도 빠지지 않을 거라 생각한다. 그래서 우리 편 편향이라는 함정에 빠지고도 알아차리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국내에도 자칭 ‘어용 지식인’ 등 우리 편 편향에 빠진 사례가 있지만, 미국인인 저자가 들여다보는 사례는 실증적이다. 미국 학계는 좌파(리버럴) 판이다. 2012년 기준 미국 심리학과 교수의 90% 이상이 스스로 좌파라고 생각하고 있다고 응답했고, 하버드대는 2020년 조사에서 전체 교수의 80%가 자신이 좌파라고 답했다. 이념적으로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을까. 저자는 “좌파 교수 집단은 정치적 적들에게서 심리적 결함을 발견하기 위한 탐구에 나섰다”며 “불관용·편견·낮은 지능·고리타분한 사고방식이 보수주의와 상관성이 있다고 밝힌 연구가 쏟아져 나왔다”고 했다. 우리 편 편향은 “공화당 지지자는 민주당 지지자보다 지능이 떨어진다”는 학술 논문까지 쏟아졌다. 물론 후속 연구들에서 이런 주장은 근거가 없음이 밝혀졌다.
오히려 흔히 열린 마음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좌파도 우파만큼이나 관용적이지 않았다. 미국 보수가 낙태 찬성론자에게 불관용적인 만큼 미국 좌파도 낙태 반대론자에게 비슷한 강도의 불관용을 드러냈다는 연구가 나왔다.
저자에 따르면, 가방 끈 긴 좌파가 ‘계급 배반 투표’라며 노동계급이 우파에 표를 던지는 것을 지적하는 것도 우리 편 편향에서 비롯된다. 이들이야말로 증세에 찬성하는 후보를 지지하면서 자신의 금전적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하고 있지 않은가. 저자는 이런 좌파의 사고방식을 이렇게 꼬집는다. “다른 유권자들은 절대 그들의 금전적 이익에 반하는 투표를 해선 안 되지만,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은 비합리적이지 않다. 왜냐? 나는 깨어있는 시민이니까.”
책은 한국 일부 지식인들이 왜 ‘어용 지식인’을 자처하며 ‘내로남불’에서 벗어나지 못하는지에 대한 궁금증을 해결해준다. 좌·우를 떠나서 그게 인간 본성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는 우리 편 편향에서 비롯된 신념을 리처드 도킨스가 주장한 ‘이기적 유전자’에 비유한다. 사람이 의식적으로 선택한 것이 아니라 신념이 더 퍼져나가기 위해서 사람을 선택한다는 관점이다. ‘우리 편’에 유리한 (가짜)뉴스를 퍼 나르고 공유하는 모습을 보면 적절한 분석으로 보인다.
우리 편 편향을 인지하고, 각자가 얼마나 이에 취약한지 깨달으면 작금의 정치적 분열이라는 재앙을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리라는 것이 저자의 희망이다. 우리 편 편향을 벗어나는 길은 신념의 편향성과 불완전성을 이해하고 자신의 신념을 회의하는 데서 시작된다.
저자의 처방전은 ‘인지적 분리’다. 내가 아닌 타인의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기술을 뜻한다. 물론 이는 본능을 역행하는 일이라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저자는 이를 ‘브로콜리’와 ‘아이스크림’에 비유한다. 내 식대로 정보를 처리하는 건 달콤한 아이스크림처럼 손이 자주 가지만, 우리 편만 모인 울타리에서 벗어나려면 의식적으로 브로콜리를 먹어야 한다는 주장이다.
☞우리편 편향(Myside Bias)
자신의 세계관과 일치하는 주장만 선호하는 현상. 사실이기를 바라는 내용을 뒷받침할 방식으로 증거를 찾고 해석한다. 확증 편향, 기준점 편향 등 다른 편향과 달리 모든 인구 집단에서 나타난다. 지식인층도 벗어나지 못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