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보가 아니라 좌파다.” 경제학자 우석훈(54) 성결대 교수는 좌파임을 숨기지 않겠다는 듯이 붉은 셔츠 차림으로 새빨간 경차를 타고 나타났다. 흔히 진보 경제학자로 불리던 그가 진보와 좌파의 구별 짓기에 나섰다. 자신의 철학 없이 보수 우파의 반대 역할만 하는 ‘진보’를 비판하기 위해서다.

10년 된 경차 모닝을 몰고 온 경제학자 우석훈 성결대 교수. 빨간 자동차와 붉은 셔츠를 입고‘명랑한 좌파’를 제안했다. /고운호 기자

그는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 제기를 등한시하면서 한국 진보는 집권을 위한 이익집단으로 전락했다”며 “진보는 재집권 5년 만에 정책적으로 실패했고 미학적으로 파산했다”고 했다. 잇따른 부동산 정책 실패와 양극화, 노무현의 죽음을 강조하며 포즈만 엄숙주의를 취하는 현 진보 세력을 겨냥한 것이다. 최근 책 ‘슬기로운 좌파생활’(오픈하우스)을 내놓은 그를 최근 서울 광화문에서 만났다.

흔히 진보 좌파로 통칭하지만 우석훈은 ‘진보=좌파’라는 등식을 부정했다. 그는 자본주의에 문제 제기를 하는 좌파와, 자본주의에 대한 고민은 없이 집권을 위한 이익집단으로 전락한 진보로 둘을 나눴다. 그는 지금 한국 진보 세력을 이렇게 진단했다. “전두환·최순실·박근혜 같은 ‘절대 악’이 존재한다는 전제 아래에서 시대정신을 표출한다. 거대 악이 사라지면 나아갈 곳을 잃는 것이다.”

좌파는 하부구조(경제)에 집중한다. 상부구조(법·정치)는 하부구조에 따른다는 마르크스 경제학의 주장을 따르는 것이다. 그러나 우석훈이 보기에 한국 진보는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의식이 빈약하고, 그 결과 하부구조는 건드리지 않으면서 상부구조부터 개혁하겠다고 나섰다가 실패했다. “현 정부가 부르짖는 사법 개혁·언론 개혁이 대표적이다. 하부구조인 경제·계급 문제에 대한 논의는 사라졌다.” 그는 그 결과 진보는 보수에 대한 안티테제(반대 주장)로만 존재하게 됐다고 했다. “젠더 이슈에서 보수가 먼저 움직이면 진보는 ‘쟤들 어떻게 하면 이길까’를 생각하며 뒤따라 움직이는 것이 대표적이다.”

물론 한국 사회에서 ‘좌파’ 딱지는 부담스럽다. 그 역시 분단 이후 좌파는 혐오재로 기능하며 요괴 같은 이미지가 붙었다고 인정한다. 소위 ‘강남 좌파’ 인사들이 자신을 좌파라고 부르는 것을 봤냐고 그는 되묻는다. 좌파 딱지는 불이익을 받지만 진보라고 표현하면 리스크가 없다. 우 교수 기준에 따르면, 한국 진보 세력은 자본주의 모순에 큰 관심이 없으니 좌파라 하기도 애매하다. 그는 “한국 정치 지형에서 보수는 저위험 고수익, 진보는 고위험 초(超)고수익, 좌파는 저위험 수익 없음”이라고 평한다. 그는 “세계적으로 정치 지형을 좌·우파로 구분하는데 한국은 좌파 아닌 진보가 그 자리를 줄곧 차지해왔다”며 “새가 좌우의 날개가 아니라 진(보)우(파)의 날개로 난다”고 했다.

그는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해서는 “좌파였다면 종합부동산세를 폐지했을 것”이라며 “재산세가 1% 수준으로 높은 미국을 포함해서 세금으로 부동산 가격을 잡은 국가가 없다”고 했다. 소위 ‘이대남’의 보수화 역시 진보에 책임이 있다고 했다. “이대남이라는 외계인이 뚝 떨어진 게 아니다. 진보 집권 결과 나타난 현상이다. 10대 보수화와 여성 혐오는 더 심각하다. 교육 제도를 개편하고 청년 일자리 확보를 위한 노력을 해야 보수화와 여혐 문제가 완화될 텐데 관련 정책이 없었다”고 했다.

책은 멸종 위기종인 한국 좌파를 늘려보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는다. ‘좌파’가 한국 대중문화에 기여하고 있음을 강조한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과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은 좌파적 세계관을 담아내며 국제적 인기를 끌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과시성 소비(플렉스·flex)를 즐기는 2030을 유혹하려면 ‘경차 타는 좌파’는 매력 없어 보이지 않을까. “빨간 스포츠카를 타고 다니면 좌파 영입에 도움이 되지 않겠느냐”고 농담 섞은 질문을 했다. 그는 “아휴. 그래서 좌파가 늘어나면 제가 페라리 타고 다니죠”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