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9일 나온 미술책 ‘이건희 컬렉션’(서삼독)은 출간 한 달 만에 1만5000부 팔렸다. 이건희 컬렉션 중 김환기, 이중섭, 모네, 피카소 등 16명 작품 27점을 다뤘는데 이건희 이름값뿐 아니라 책의 형식도 판매에 한몫했다. 부제는 ‘내 손 안의 도슨트북’. 도슨트(docent·전시안내인)의 설명처럼 쉽고 짤막한 해설을 덧붙였다. 저자 양상선씨는 미국 거주 전시 해설사다. 이정아 서삼독 대표는 “이건희 컬렉션을 찾는 사람 중엔 평소에 미술관을 찾던 사람이 아니라 호기심으로 진입하는 사람도 많은데 그들을 위한 안내서가 없었다. 말 걸듯이 쉽게 쓴 것이 독자들 마음을 움직였다고 본다”고 말했다.
미술 대중서의 ‘문법’이 바뀌고 있다. 10여 년 전만 해도 전문가가 미술사적 해설에 문학적 감상을 곁들인 미술 에세이가 유행했다. 10만부 팔린 미술사학자 이주은 건국대 교수의 ‘그림에, 마음을 놓다’(앨리스)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요즘 잘 나가는 미술책에는 역사도, 문학도 드물다. 독자들이 치렁치렁하게 긴 글을 반기지 않기 때문이다. 미술책 전문 출판사에서 일하는 한 편집자는 “사람들이 그림 ‘감상’만 원할 뿐 텍스트를 통해 그림을 ‘공부’하고 싶어 하지 않는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다 보니 미술책은 점점 화보 위주가 된다. 지난해 6월 출간된 화가 우지현씨의 ‘풍덩!’(위즈덤하우스)은 30대 여성 독자의 호응 속에 5쇄를 찍었다. 에세이 형식이지만 피카소, 호크니 등의 수영장 그림 100여 점을 싣고, 글 길이는 최소한으로 줄였다. ‘이건희 컬렉션’ 저자가 지난 25일 낸 뉴욕현대미술관(MoMA) 도슨트북 ‘그림들’(나무의마음)은 작품당 소개글이 한 페이지를 넘지 않는다. 이선희 나무의마음 대표는 “편집부에서는 글을 더 붙이길 원했는데 저자가 대중 눈높이에 맞춰야 한다며 반대했다”고 말했다. 이 책은 출간 즉시 중쇄를 찍었다. 이 밖에 ‘방구석 미술관’(블랙피쉬), ‘1페이지 미술 365′(비에이블) 등 대부분의 미술 분야 베스트셀러가 짧고 쉬운 해설을 곁들였다. 짧은 포맷의 소셜미디어 유행도 영향을 끼친다. 출판평론가 한미화씨는 “그림 한 컷에 몇 줄 덧붙여 인스타그램에 올릴 수 있는 정도의 정보만 알려주는 미술책이 주로 소비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