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TV+ 드라마로 제작돼 최대 화제작이 된 이민진 작가 소설 ‘파친코’의 국내 판권이 출판사 인플루엔셜로 넘어갔다. 이 출판사 관계자는 3일 “판권 입찰에 참여해 최종 오퍼로 승인받았다”며 “번역을 다시 해 3개월쯤 뒤 서점 판매를 시작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민진 작가는 “기존 번역으로 출간해도 무방하다”는 입장이었지만 기존 번역 저작권이 판권을 가지고 있던 문학사상에 있기 때문에 다시 번역을 하게 된 것이다.
파친코 1·2권은 드라마 공개 후 주요 서점가 종합 베스트셀러 1·2위에 올랐지만 판매가 중단됐다. 문학사상과의 계약 연장이 불발되면서 지난달 21일 판권이 만료됐기 때문이다. 이후 알라딘 중고서점에서 1·2권 합본 세트가 10만원을 넘는 등 품귀 현상을 겪었다.
지난달 중순부터 에릭양 에이전시가 대행한 입찰엔 국내 주요 출판사 10여 곳이 뛰어들어 치열한 경쟁을 벌였다. 선인세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출판계에선 최소 25억원이 넘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입찰에 참여한 모 출판사 관계자는 “1차 입찰에서 에이전시 측이 ‘최소 선인세 20만달러(약 2억5000만원)를 포함한 인세 8% 지급’ 조건을 제시했다. 2차 입찰로 넘어가며 남은 출판사가 제시한 선인세 평균액이 125만달러(약 15억8000만원), 인세도 10%로 올라갔다”며 “최종 선인세는 200만~250만달러(약 25억~31억원) 이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 경우 기존 책 가격(권당 1만4500원)으로 170만~200만부 정도 팔려야 선인세 액수를 맞출 수 있다. 지금까지 해외 문학 선인세 기록은 무라카미 하루키의 ‘기사단장 죽이기’(20억~30억원대)로 알려져 있다.
인플루엔셜은 이민진 작가의 소설 ‘백만장자를 위한 공짜 음식’(2008)의 판권도 함께 가져가는 조건으로 계약했다. 이 책은 선인세 시작 금액이 10만달러(약 1억2700만원)였다. 이와 함께 작가가 내년 봄 출간 예정인 신작 판권 계약 우선권도 갖는다. 작가는 전 세계 대도시의 한국인 학원을 소재로 새 소설을 쓰고 있다고 본지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이번 계약은 출판계까지 뻗친 OTT업체의 영향력을 보여준다. 한 출판 관계자는 “막강한 자금력을 지닌 OTT업체가 알아서 광고해주기 때문에 출판사 입장에선 광고비를 아낄 수 있다는 것이 엄청난 매력”이라며 “게다가 OTT 드라마는 영화와 달리 ‘시즌제’가 있어 지속적인 판매 가능성이 높다”고 했다.
이미 잭팟을 터뜨렸고, 시즌 1 종영과 함께 시즌 2 제작이 확정된 ‘파친코’의 경우 출판사로선 놓칠 수 없는 대어였다. 해외 문학 판권 계약인데도 이례적으로 비문학 출판사가 대거 참여했다. 인플루엔셜도 ‘미움받을 용기’ 등 비문학 서적을 주로 펴낸 출판사다.
과도한 선인세 경쟁에 대해선 비판이 나온다. 모 출판사 관계자는 “한참 전에 나온 전작 판권까지 끼워 파는 등 아무리 ‘돈 넣고 돈 먹기’라지만 정도가 너무 심하다. 진짜 책 이름처럼 출판 시장을 도박판으로 만들어 버린 것 같아 씁쓸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