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메리 앤 메이슨·니컬러스 H. 울핑거·마크 굴든 지음|안희경 옮김|시공사|380쪽|2만2000원

“미국 박사 학위 소지자의 절반 이상이 여성이지만, 여성은 일반적으로 학계의 ‘정규직’이라 할 수 있는 정년 트랙 교수직을 구할 가능성이 남성보다 7% 낮다.” 뻔한 이야기라 생각한다면 이건 어떤가? “자녀가 없는 미혼 여성은 전 학문 분야에 걸쳐 자녀가 없는 미혼 남성에 비해 교수 자리를 구할 가능성이 16% 높다.”

저자들은 정규직 교수 자리에서의 성비 불균형 문제를 단지 ‘성차별’로만 설명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말한다. 앞 통계처럼 여성 박사들은 어린 자녀가 없다면 남성 박사보다 대학 교원 임용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즉 여성이 학계 커리어 초반에 고생하는 이유는 이들이 여성이기 때문이 아니라 결혼하고 아이가 있기 때문이다.”

성평등 이슈에서 ‘결혼’과 ‘아이’는 중요한 변수다. 저자들은 “진정한 성평등은 여성과 남성이 커리어 목표와 가정의 목표를 동일하게 실현하는 것”이라 전제한다. 이 전제 아래 2001년부터 10여 년 동안 학계 구성원들의 결혼과 자녀 문제가 이들의 삶 전반에 걸쳐 미치는 영향을 광범위하게 살폈다. 2년에 한 번 실시하는 미국 국립과학재단의 ‘박사 학위 소지자 조사’ 결과가 연구 토대가 됐다. 2020년 작고한 대표 저자 메리 앤 메이슨은 연구 당시 UC버클리 로스쿨 교수였고, 니컬러스 H. 울핑거는 유타대 가족소비자학과 교수, 마크 굴든은 UC 버클리에서 교원의 생애 주기를 연구했다.

아이 돌보랴, 일하랴 정신없는 워킹맘. 저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교수들은 일주일에 평균 53~59시간을 일하지만‘일’의 정의에 무급 가사 노동을 포함하면‘교수 엄마’는 일주일에 94시간을 일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미국 학계 상황일 뿐’이라 치부할 문제는 아니다. 미국에서든 한국에서든 고학력 여성들이 왜 결혼하지 않고 아이를 낳지 않는지로 확장시킬 수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한국 내각의 성비 불균형을 지적한 워싱턴포스트 기자에게 “그 직전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고 한 윤석열 대통령이 뭘 놓치고 있었는지를 설명할 수 있는 근거이기도 하다.

학계의 ‘인재 송수관’이 가장 많이 새는 시점은 박사 학위를 받은 이들이 교수 임용을 위해 전력 질주하는 커리어 초반이다. 남성은 ‘커리어 시계’에만 집중하면 되지만 여성은 ‘생체 시계’에 따른 가임기도 고려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많은 여성이 일보다 육아에 집중하는 ‘마미 트랙’과 일에 집중하는 ‘커리어 트랙’을 놓고 고민에 빠진다.

‘마미 트랙’을 선택한 여성은 학계를 떠나거나 ‘2군’으로 분류되는 비전임 교원으로 남는다. ‘커리어 트랙’을 선택한 여성들은 학계의 최상층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비혼이거나 아이가 없다. 연구에 따르면, 정년 트랙 여성 교원은 남성보다 아이를 낳을 가능성이 35% 낮다. 미국 학계에서 정년 트랙 교원이 되면 다시 ’정년 보장(tenure)’을 받기 위해 질주해야 한다. 많은 여성 교수가 아이를 갖지 않겠다고 결심한다. 정년 보장을 받은 이후로 출산을 미루는 여성들도 있지만 늦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좋은 일자리, 연구비, 저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는 기회는 모두 유한하다. 교수 엄마는 이 제한된 자원과 기회를 얻기 위해 미혼이거나 아이가 없는 학자들과 경쟁해야 한다. 전업주부인 배우자를 둔 교수 아빠와도 경쟁해야 한다. 그 결과 가장 오랜 시간 일하는 연구자가 연구비를 따고, 학술지에 논문을 발표하고, 궁극적으로 가장 좋은 기회를 얻게 된다.” 저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자녀를 둔 여성 교수는 평균 1주일에 53시간 일하고, 아이가 없는 여성 교수는 일주일에 59시간 일한다. 아이가 있는 남성 교수는 56시간, 아이가 없는 남성 교수는 58시간 일한다.

저자들은 일과 가정을 양립할 수 있는 가족 친화 정책을 대안으로 내놓는다. UC버클리와 프린스턴 대학 등에서는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거나 하는 상황에서 베이비시터를 보내주는 ‘긴급 보육 제도’를 도입했다. 캘리포니아 대학교는 2006년 전일제로 복귀가 보장된 ‘시간제 정년 트랙 교수직’을 도입했는데, 여성 조교수들이 아이를 가질 확률이 2003년보다 2배 이상 높아졌다.

페미니즘 책들이 쏟아지고 있지만 정교한 통계를 바탕으로 소위 ‘좋은 일자리’에서의 성비 불균형을 설명한 책은 드물었다. 저출산 사회의 원인은 “여자들이 이기적이라서”가 아니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게일 콜린스의 주장처럼 “여자들이 모든 것을 갖는 데 실패하기 때문”이다. 저자들은 한국어판 서문에 이렇게 썼다. “우리는 대학 등의 고등교육 현장에서 여성이 맞닥뜨리는 진입 장벽을 없애는 것이 도덕적으로 필요할 뿐 아니라 국가를 위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미국이라는 국가는 남성만이 아닌 모든 이의 재능으로 번성할 수 있습니다. 이런 변화가 한국에서도 일어나길 바랍니다.” 원제 Do Babies Matt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