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모든 안경의 역사|트래비스 엘버러 지음|장상미 옮김|유유|576쪽|2만5000원
세상 사람은 둘로 나뉜다. “안경을 쓴 사람과 쓸 사람.” 눈이 좋은 성인도 노안이 찾아오면 돋보기를 찾게 되니 반박하기 어려운 말이다.
세계 인구 78억명 중 40억명이 안경을 쓰고 있고, 국내에서 안경을 쓴 인구는 56%에 달한다는 연구도 있다. 늘 체감하고 있으니 대단치 않은 수치라 생각할 수 있다. 그렇지만 만약 인간이 안경 없는 세계에 떨어지면 어떻게 될까. 근시용 안경이 보편화되기 이전인 중세에는 이들이 병동에 격리당할 수도 있었다. 출신까지 미천한 경우라면 그 가능성은 더 높아진다. 노인·병약자·정신이상자가 그랬듯 말이다. 역사가 토머스 말도나도에 따르면 시각장애가 심한 사람은 병약자로 분류됐다. 놀랍게도 이런 시선은 20세기에도 계속됐다. 1930년 영국에서 한 연구자는 “근시인 아이는 (중략) 자기가 생각하는 정의와 옳은 것에 대한 주장이 강할 때가 많아 불쾌한 인물이 될 수 있다”는, 지금 보면 동의하기 어려운 발언을 하기도 했다. 안심해도 좋다. 이제는 안경이 있다.
영국 가디언과 BBC 등에 기고하며 대중문화사를 다뤄온 영국 작가인 저자는 독자를 이러한 안경의 세계로 안내한다. 13세기 유럽 수도원에서 ‘돋보기’ 용도로 처음 발명된 안경이 어떻게 근시와 난시를 치료하게 됐는지 그 역사를 추적한다.
오목렌즈는 그리스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오늘날과 유사한 안경은 13세기 후반 유럽에서 처음 사료적 근거를 찾을 수 있다. 피렌체의 아르마티가 안경을 발명했다는 것이다. 동물 뼈나 목재로 만든 길쭉한 틀에 렌즈를 끼워 연결한 것으로 얼굴에 고정되지 않았다.
근시용 안경은 피렌체 메디치 가문 덕분에 탄생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피렌체 유력 가문이었던 메디치는 은행업과 상업을 통해 재산을 축적했고, 교황도 배출한 명문가. 그런데 저자는 당시 기록과 초상화를 검토하면서 메디치 가문에서 ‘근시’가 유전됐을 것이라 추측한다. 메디치가 혈통의 교황 레오 10세가 10㎝ 이상 떨어진 대상은 알아보기 힘든 근시였다는 사료에 주목한다. 그는 “근시용 안경 제작자는 피렌체에서 가장 힘 있고 부유한 가문의 후원을 기대할 수 있었을 것”이라며 피렌체가 근시용 안경의 발상지라고 추론한다.
흥미로운 점은 라파엘로가 그린 레오 10세 초상화에서 ‘안경’은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는 손에 돋보기같이 생긴 도구(안경)를 들고 있다. ‘안경잡이’는 신체적 결함을 지닌 사람이라는 인식이 강했던 탓에 이를 숨기려고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 같은 형태의 안경은 18세기에 등장한다. 귀와 닿는 테 가장자리에 ‘ㄱ’자 다리를 다는 방식이 고안된 덕분이다. 이후로도 발전은 계속된다. 아이작 뉴턴 같은 과학자가 ‘광학’을 연구하며 자료를 쌓았고, 안경 테 재질은 거북이 껍질, 플라스틱으로 다양화했다. 뿔테 안경은 할리우드 무성영화 배우 해럴드 로이드를 통해 보편화됐다고 한다. 비틀스의 존 레넌 역시 안경 유행을 선도했다. ‘안경잡이’에 대한 편견은 시간이 지나며 사라졌다. 레오 10세와 달리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시로 안경을 쓰고 등장한다. 안경은 장애라는 편견을 기술로 몰아낸 가장 성공적인 사례인 것이다.
흔히 영어로 안경 하면 ‘glasses’를 떠올리지만, ‘spectacles’라는 표현도 문학 작품 등에서는 자주 안경을 뜻하는 단어로 쓰인다. 장관(spectacle)의 복수형이다. 안경은 무수한 근시·난시·원시 등 ‘장애인’으로 분류되던 이들에게 장관을 선물해준 발명품이다. 사실 안경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프랑스 계몽사상가 볼테르가 쓴 소설 ‘캉디드’에 등장하는 팡글로스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만물은 고유한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을 달성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코를 보세요. 안경을 걸치게끔 만들어 놨으니 우리가 안경을 쓰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