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 돌보랴, 일하랴 정신없는 워킹맘. 저자들의 연구 결과에 따르면 미국 교수들은 일주일에 평균 53~59시간을 일하지만‘일’의 정의에 무급 가사 노동을 포함하면‘교수 엄마’는 일주일에 94시간을 일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바이든 미국 대통령 방한 기자회견에서 한국 내각의 성비 불균형을 지적한 워싱턴 포스트 기자에게 윤석열 대통령은 “그 직전의 위치까지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했다”고 대답했죠. 그가 어떤 지점을 놓치고 있었는지 이 책,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시공사)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이 책은 2001년부터 10년 넘게 미국 UC버클리 연구진이 전국 박사학위 소지자들의 생애주기 추적 결과를 바탕으로 연구한 결과를 담았습니다.

이들은 학계 구성원 중 남성이 압도적으로 많은 이유가 단지 ‘성차별’ 때문일까? 라는 의문을 가지고 연구에 임했습니다. 그 결과 결혼하지 않고 아이가 없는 여성 박사의 정년트랙 교수 임용률이 같은 조건의 남성 박사보다 6% 더 높다는 걸 밝혀냈죠. 그렇지만 ‘결혼’과 ‘자녀’라는 변수를 고려하면 여성의 임용률은 현격하게 낮아집니다. 왜냐하면 학위 받고 임용될 시기 남성들은 ‘커리어 시계’만 따라가면 되지만 여성들은 ‘커리어 시계’와 가임기에 따른 ‘생체시계’를 함께 좇아야 하기 때문에요.

이 과정에서 여성들은 일보다 육아에 집중하는 ‘마미 트랙’과 일에 더 집중하는 ‘커리어 트랙’ 중 한 가지를 선택해야 하는데, ‘마미트랙’을 선택하는 여성들은 대부분 학계의 ‘2군’으로 분류되는 비정년교수트랙이나 시간강사로 남습니다. 장관과 같은 사회적으로 인정받는 지위 직전의 위치에 여성이 많이 올라오지 못한 건 여성이 능력이 없어서가 아닙니다. 가족친화와는 거리가 먼 사회 분위기 때문이죠. ‘아이는 얼마나 중요한가’의 연구만 해도 이 책의 주저자인 메리 앤 메이슨이 2000년 UC버클리 최초의 여성 대학원장으로 임명되면서 시행했습니다. 사회의 요직에 여성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주는 사례입니다.

얼마 전 오래간만에 거리 행사 취재를 나갔다가 살짝 당황했습니다. 펜으로 수첩에 적는 사람이 저밖에 없더군요. 초년병 기자들이 대부분이었는데 길바닥에 앉아 무릎 위에 노트북 컴퓨터를 놓고 자판을 두들기고 있었습니다. “요즘 애들은 수첩을 안 쓰나봐.” 함께 온 사진부 후배에게 말했더니 돌아온 대답. “간혹 쓰시는 분도 있긴 하더라고요. 대부분 노트북이나 휴대전화 메모장 쓰지만.” 고개를 끄덕이다 깨달았습니다. 아, 그 ‘간혹’이 바로 나구나….

이탈리아 캘리그래퍼 프란체스카 비아세톤(61)의 에세이 ‘손글씨 찬가’(항해)를 읽다가 그 경험이 떠올라 피식 웃었습니다.

“수년 전, 학생들과 손글씨에 대한 대화를 나누다가, 좋아하는 가수에게 사인을 받는 것과 문자 메시지를 받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좋은지 물었다. 그들의 대답은 ‘문자 메시지도 좋다’라는 것이었다. ‘밀레니얼 세대’는 서명과 문자 메시지의 차이를 느끼지 못하는 걸까?”

비아세톤은 이어서 말합니다. “손으로 쓴 문장을 읽을 때와 컴퓨터로 쓴 문장을 읽을 때 우리는 감정적으로 큰 차이를 느낀다. 그 차이는 숙고해볼 만한 것이다. 내가 쓸 때, 나는 ‘당신에게’ 쓴다. 글씨를 쓰기 위한 도구를 손에 쥐고, 어떤 종이에 쓸 것인지 정해서, 내 글씨체로 쓴다.”

손에 쥐기 편한 두께에 지질(紙質)이 좋은 수첩, 종이 위를 매끄럽게 달리는 펜이 일터에서의 무기라 생각하던 때가 있었습니다. 기사 작성하려 수첩을 뒤적이면 취재 현장 분위기, 인물들의 표정까지 생생하게 떠올랐죠. 손글씨는 감정을 반영하는지라 상황에 따라 필치도 달라졌으니까요. 그런 기억때문일까요? 디지털 시대의 무기는 새로워야 한다는 걸 머리론 알면서도 이탈리아 소설가 세바스티아노 바살리의 이 문장에 이끌려 갑니다. “내 마음은 종이에 묻어도 좋다.” 곽아람 Books 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