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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츠키와 야생란

이장욱 지음|창비|298쪽|1만5000원

떠난 이는 말이 없지만, 남겨진 이들에겐 할 말도 함께 남는다. 누군가의 부재에 대한 그리움과 쓸쓸함, 그리고 하지 못한 질문들이. 이런 질문을 반복하다 보면 마치 떠난 이와 함께 살아가는 듯한 착각마저 든다.

소설집 ‘트로츠키와 야생란’은 그와 같이 쓸쓸한 질문들을 모았다. 올해 이상문학상 우수작인 ‘잠수종과 독’을 비롯해 2020년부터 2년간 쓴 아홉 편의 단편. 연인의 죽음과 관련된 방화범에게 독이 될 수도 있는 약을 주사할지 망설이는 의사(잠수종과 독), 산에서 추락해 중상 입은 친구가 있는 고국으로 돌아가고자 꽁꽁 언 바이칼 호수를 밤새 걸어가는 이(트로츠키와 야생란), 죽은 클레오를 그리워하는 K(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 귀가 유독 예뻤던 잠수부 애인이 왜 물속에서 끝내 나오지 않았는지 궁금해하는 연인(귀 이야기) 등을 그렸다. 이들은 누군가의 부재를 추억하는 동시에 그들이 정말 떠나간 것이 맞는지 되묻고, 때로는 그 연유를 묻는다.

1994년 ‘현대문학’을 통해 시인으로 먼저 등단한 이장욱 작가는 2005년 장편 ‘칼로와 유쾌한 악마들’로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소설가로도 활동해왔다. 그는 ‘작가의 말’에서 바로크 시대 유행 경구였다는 ‘메멘토 모리’가 “죽음을 기억하라”는 뜻 외에도 “죽음을 곁에 두고 살아가라”, “죽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라”는 뜻이 동시에 담긴 것일지도 모른다고 했다. 그의 말처럼 죽음을 기억하고,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는 이들은 소설 속 인물만이 아닐 것이다. 그런 사실을 깨닫는 게 어떤 읽는 이에겐 버거울 수도, 또 어떤 이에겐 위안이 될 수도 있고, 혹은 작가의 말처럼 “아, 그렇구나” 했다가 어느 밤 떠난 이들을 ‘곰곰 보듬어보게’ 되는 감상이 될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