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에 <짱깨주의의 탄생>이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저자는 중국 상하이 푸단대학에서 공부한 김희교 광운대 교수입니다. 책은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이 최근 추천하면서 유명해졌지요.
‘누구나 함부로 말하는 중국, 아무도 말하지 않는 중국’이란 부제(副題)를 달고 있는데요. “구입할만한 가치있는 책인가?”, “소감을 글로 공개하는 게 온당한가?”며 망설이다가 한·중 수교 30주년에 ‘중국 옹호 논리도 알아보자”는 마음에서 책을 읽었습니다.
본문만 653쪽인 책을 덮으며 “강변(强辯)과 견강부회(牽强附會)가 가득한 위험한 책인데, 왜 이 책을 전직 대통령이 추천했을까”하는 생각이 강하게 들었습니다. 출발부터 이상합니다. 서문의 구절들입니다.
“지금 고양된 (한국내) 혐중(嫌中) 정서의 밑바탕에는 전후(戰後) 체제의 위기와 미국의 회귀적 체제 기획이 숨어있다. (중략) 일부 우익적 보수언론은 유사인종주의까지 동원하여 중국을 몰아내야 한다고 외친다” (6쪽)
“중국에 대한 혐오의 뿌리는 제대로 청산되지 못한 ‘화이(華夷)사상’과 지금 일상에서 작동하고 있는 ‘신(新)식민주의’와 연결되어 있다.”(8쪽)
그런데 어느 보수 언론이 유사인종주의를 동원해 중국을 몰아내야 한다고 외쳤던가요? 사실 자체가 전무(全無)할 뿐 더러 그런 소문조차 여태 없습니다. 한국의 반중(反中) 정서가 신식민주의에서 연유한다는 주장도 어불성설입니다.
저자는 1951년 샌프란시스코에서 미국 주도로 49개국이 모여 만든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을 샌프란시스코체제로 명명하면서, 이 조약은 미국이 만든 신식민주의체제라고 말합니다. “이 조약에 한반도의 대표자들이 초청되지 못했고 중국이 배제되면서 신식민주의적 요소가 출발했다”(44쪽)고 했습니다.
6.25 전쟁 중이던 1951년 당시 한국은 참여할 형편이 아니었고, 중국은 미국과 교전(交戰)하고 있었죠. 샌프란시스코 평화조약이 이런 이유 때문에 신식민주의라는 건 억지일 뿐입니다.
지해범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객원연구위원은 “미국을 제국주의 국가로 보는 것은 북한, 중국 등 사회주의 국가의 세계관이자 1970~80년대 운동권적 시각에 머물러 있는 것”이라며 “미국은 오히려 윌슨의 민족자결주의에 기초하여 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아시아 약소국의 독립을 지지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중국은 ‘무결점 국가’...한국엔 끝없는 비판
두 번째는 중국에 대해서는 한없는 찬양과 이해로 일관하면서, 한국 언론과 지식인에 대해서는 끝없는 비판과 몰(沒)이해를 반복한다는 겁니다. 한 마디로 ‘중국 입장’을 줄기차게 옹호·대변하는 책입니다. 중국발(發) 미세먼지, 중국인의 한국 부동산 투자, 쌍용차 등 한국 기업을 상대로 한 기술 유출, 중국의 군사력 강화 등에 대해 중국측 입장과 논리를 앵무새처럼 얘기하고 있죠.
예를 들어 중국의 군사력 강화는 세계 대다수 국가가 긴장하고 경계하는 위협 대상인데요. 중국은 해군력만 봐도 2035년까지 6척의 항공모함을 확보하고 2030년까지 최소 4개의 항모전단을 꾸려 세계 두 번째 대양 해군 육성 계획을 밝히고 있어요. 과거 30년 동안 못 보던 야심찬 국방력 확장 움직임인데, 이는 신중국 건국100주년이 되는 2049년까지 세계 1위 군사 강국이 되겠다는 ‘중국몽(中國夢)’ 전략에 기인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중국의 공식 국방비는 미국의 30% 수준이지만, 실제 지출은 공식 발표를 크게 웃도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어요. 스웨덴 국제평화연구소(SIPRI)는 “군의 장기적인 현대화 계획과 다른 강국을 따라잡으려는 열망 때문에 중국의 국방비 지출이 2020년까지 26년 연속 증가했다”며 “중국의 2020년 국방비 지출은 공식 수치 보다 41% 많았다”고 2021년 4월 26일 발표했습니다.
그런데 저자는 이를 “미국의 군사 굴기(崛起)에 최소한의 억지력을 갖추기 위해 국방비 지출을 늘려야 하는 구조”(289쪽) “한국의 안보 보수주의자가 주장하는 중국의 ‘군사굴기’는 실질적으로 중국의 ‘군사굴기’를 만들어내는 데 기여할 수 있다”(292쪽)고 했습니다. 중국의 국방·군사력 강화를 외부의 남 탓으로 돌리는 주장입니다.
서울 시내 대학 강단에서 강의하는 한국 교수가 중국의 입장과 시각, 논리를 맹종하며 주창하는 게 놀랍습니다. 주재우 경희대 교수의 지적입니다.
“국내 진보학자의 가장 큰 문제는 반쪽만 본다는 점이다. 이들은 세계 패권 장악을 노리며 거침없이 공세적인 행태를 노골화하는 중국의 행태는 애써 눈감고 있다. ‘중국과 무조건 잘 지내야 하고, 중국을 화나게 해서는 안된다’는 프레임을 짜놓고 거기에 모든 팩트를 맞추고 있다.”
이런 사례는 책에 넘쳐납니다. “BTS는 밴플리트상 수상(受賞)을 거부했어야 한다”(341쪽), “‘김치공정’은 한국 안보 보수주의자의 정치적 기획”(344쪽) “동북공정의 목적은 북한 붕괴에 대비한 동북지방의 안정화이다”(347쪽), “남중국해에서 중국의 인공섬은 미국의 군사적 ‘항행의 자유’를 막기 위한 보루”(298쪽)….
◇“진보언론도 反中된 이유, 중국은 성찰해야”
또 하나 눈길을 끈 것은 한국 언론 비판 부분입니다. 김 교수에 따르면 “‘짱깨주의’는 미국 중심 신식민주의적 세계 질서에 포박된 한국의 보수 세력이 ‘중국 없는 세계’를 주술(呪術)처럼 꿈꾸며 끊임없이 중국을 악마화하는 현상과 그 결과물”인데요. 이 ‘짱깨주의 기획’의 최일선을 담당하는 게 한국 언론(373~402쪽)이라는 겁니다.
그는 한국 언론이 ‘나쁜 중국’ 프레임을 만들고, 가짜뉴스 혹은 왜곡된 기사를 양산하고, 대중은 이를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인다고 주장합니다. 그 결과 한국인의 머릿속에 그려진 중국은 현실 속엔 없는 ‘가공의 중국’이라고 단정합니다. “진보진영에서도 짱깨주의는 유통된다”(405~434쪽)며 진보 매체까지 싸잡아 비판합니다.
이 역시 무리한 주장이라는 게 많은 중국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박승준 최종현학술원 자문위원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1992년 한중 수교후 한국 언론 만큼, 중국의 세계적 부상(浮上)을 높이 평가한 보도가 주류를 이룬 곳이 세계에 어디 있나? 중국을 미국과 더불어 ‘G2′라고 명명하는 언론은 세계에서 한국이 유일하다. 실체(實體) 이상으로 중국의 힘과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긍정적으로 묘사한 게 한국 언론이다.”
우리와 인접한 중국과 좋은 관계를 맺어 좋은 이웃[善隣]이 되고자 하는 게 대다수 한국인과 한국 언론매체의 바람입니다. 제대로 된 학자라면 한국인들이 최근 중국을 미워하게 된 이유를 숙고하면서 미래지향적인 한중(韓中) 관계 방안을 제시해야 합니다.
국내 반중 정서 확산의 ‘진실’은 사드(THAAD) 보복 사태로 ‘민낯’을 보인 중국이 불씨를 뿌리고, 문재인 정부의 ‘대중 저(低)자세 굴종 외교’가 기름을 부어 들판의 불길처럼 퍼진 것입니다.
한국인의 대중 인식이 왜 악화됐는지, 중국에는 어떤 잘못이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일언반구(一言半句) 지적 없이, 시종일관 신식민주의에 포획된 한국 언론 탓으로 비판하는 것은 심각한 본말전도(本末顚倒)이며 한국인들의 분노만 증폭시킬 뿐 입니다.
중국 스스로 확산시킨 ‘짱깨주의’가 왜 진보 언론에까지 폭발적으로 퍼졌는지를 중국 당국과 한국 친중 지식인들은 냉정하게 곱씹어 성찰해야할 것입니다.
◇한국은 중국이 배워야 할 ‘모델’
그러나 희망도 보았습니다. 14억 중국의 양적(量的) 우위를 압도하는 5000만 대한민국의 질적(質的) 우위를 확인할 수 있어서입니다. 그것은 학문과 사상, 생각과 표현의 자유가 보장되는 ‘대한민국 체제의 우위’입니다.
현재 국제질서를 신식민주의로 규정하고 ‘중국은 무오류’라는 프레임에 사로잡힌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게 한국의 ‘힘’이요, ‘무기(武器)’라는 거죠. 한국의 대중(對中) 시각과 논리를 찬양하고 중국 언론과 공산당의 대(對)한국 정책을 비판하는 책이 중국에서 팔려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일은 꿈에서나 가능합니다. 자유·민주·인권 선진국인 한국은 그런 점에서 중국이 배워야 할, 살아있는 ‘모델(model)’입니다.
중국이 사상과 표현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권을 탄압하는 한, 아무리 경제력·국방력이 강해져도 글로벌 지도국가가 될 수 없다고 많은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오히려 한국이 국제사회에서 모범 국가, 표준 국가가 될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퇴임 후 처음 국민들에게 추천한 게 이 책이라는 사실은 아쉬움을 남깁니다. 송재윤 캐나다 맥매스터대 교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보수 정권 취임후 직전 정권의 저자세 친중 외교 노선이 수정되자, 문 전 대통령이 자기변명의 압박을 느낀 것 같다. 수준 높은 중국 옹호론이 아닌 조악(粗惡)한 친중주의 서적을 추천했다는 점에서 문재인 정권의 중국 인식 수준이 드러난다.”
마지막으로 급변하는 세계 정치와 미·중 전략경쟁 소용돌이 속에서 깊이있고 실질적인 중국 연구가 활발해지길 소망합니다. 우리 입장에서 중국의 강·약점과 대중 전략·방법론을 제대로 다룬 책, 보고서, 언론보도가 많아야겠습니다. 짱깨주의를 넘어 더욱 지중(知中)·극중(克中)에 매진할 때, 우리의 활로가 열릴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