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대 감각
바비 더피 지음 | 이영래 옮김 | 어크로스 | 408쪽 | 1만8000원
“이번에 들어온 신입, 완전 MZ라니까.”
‘MZ세대(1980~2000년대 초 출생)’라는 말은 때로 사회생활 경험이 적은 2030을 깎아내리는 멸칭으로 사용된다. 끈기가 없고, 자기중심적이며, 연봉을 좇아 언제든 회사를 떠날 준비가 되어 있다는 의미로 ‘MZ스럽다’는 말이 쓰이는 것. 2017년 미국 경제지 ‘포브스’에 실린 기사 ‘밀레니얼 세대와 충성심의 종말(Millennials And The Death Of Loyalty)’은 밀레니얼 세대(1980~1995년 출생)의 직장관(觀)을 이렇게 묘사한다. “밀레니얼 세대는 충성심이라는 개념을 모른다. 그들은 가만히 머물면 몸이 으깨질 것이란 생각으로 개구리처럼 이곳저곳 (직장을) 옮겨 다닌다.”
정말 ‘요즘’ 젊은 세대는 개구리만큼 충성심이 없을까? 일이 조금만 힘들어도 픽 나가떨어지는 사람들일까? “최근 젊은 세대는 참을성이 없어 직장을 자주 옮긴다”는 명제는 그 반대가 사실에 더 가깝다. 미국의 경우 20·30대 젊은 세대의 이직이 잦아진 것은 1983년부터다. 기성세대인 베이비부머 세대(1945~1965년 출생)도 과거에 지금 젊은 세대만큼 직장을 옮겼다. 영국의 경제 싱크탱크 ‘레솔루션 파운데이션(RF)’은 현재의 밀레니얼 세대는 X세대(1966~1979년 출생)가 같은 나이였을 때보다 자발적인 직장 이동 가능성이 약 25% 낮다고 분석한다. 특별히 최근에 와서 젊은이들의 인내심이 얕아졌다고 보긴 어려운 것이다.
“세대 간 존재하지도 않는 차이를 부각하는 것은 재미있을진 몰라도, 그로 인해 우리는 인구가 가진 다양한 면면을 몇 안 되는 특성으로 축소해버리고 만다.” 영국 킹스칼리지런던 공공정책학 교수인 저자는 세대 간 차이를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해 세 가지 렌즈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9·11 테러나 IMF 위기같이 모든 세대에 영향을 주는 ‘시대적 요인’, 교육·사회 진출·출산 등과 같은 ‘생애 주기 요인’, 한 세대가 공유하는 특정한 경험을 뜻하는 ‘코호트 요인’이다. 이를테면 점점 낮아지는 출생률을 이해하려면 코로나로 인한 사회적 고립과 경기 침체, 금융 위기 이후 점점 낮아지는 청년 세대의 주택 보유율, 그리고 달라진 연애와 결혼 문화 등을 모두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사람들은 편견으로 기우는 경우가 많다. 꼭 기성세대만 그런 것은 아니다. “어른들이나 노인들이 환경 문제에 귀를 기울여주었으면 합니다. 노인들은 곧 죽을 것이어서 우리가 죽든지 말든지 신경 쓰지 않아요.” ‘Z세대(1996~2010년 출생)의 아이콘’으로 불리는 가수 빌리 아일리시의 말엔 기성세대는 기후나 환경 문제에 무관심할 것이라는 젊은 세대의 편견이 담겨 있다. 하지만 글로벌 여론조사 기관 입소스에 따르면, 환경 문제 등에 대한 기업의 행동을 기준으로 제품 구매를 결정하는 ‘윤리적 소비’ 비율은 오히려 젊은 세대보다 중·장년층이 더 높게 나타났다. 환경에 대한 기성세대의 위기감은 젊은 층만큼 높다. 젊은 세대만이 기후 위기를 해결할 구원 투수는 아닌 셈이다.
저자는 세대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점증하는 ‘세대 불평등’ 문제를 가린다고 말한다. 청년 실업, 혼인율 저하 등의 문제는 젊은 세대가 독립심 없는 유약한 존재이기 때문일까? 그런 관점으론 청년층이 처한 사회경제적 위기를 해결할 수 없게 된다.
이미 미국과 영국 등 일부 선진국의 젊은 세대는 이제 자신들이 부모 세대보다 나은 삶을 살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포기하게 됐다. 아이들이 더 나은 미래를 가질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미국과 영국의 청년 비율은 2003년에서 2019년이 되는 동안 반 토막이 났다. 절망의 주된 이유는 자산 격차, 그중에서도 부동산. 세계적으로 부동산 값이 폭등하면서 청년들은 주택을 마련하기 위해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적게는 5년(미국)부터 많게는 16년(영국)을 더 노력해야 한다. 이는 한국도 크게 다르지 않은 상황. 심화되는 세대 간 자산 불평등은 세대 내 불평등으로 전이되고 있다.
낙관을 잃어버린 청년이 많아지는 것은 글로벌한 현상. 그렇기 때문에 한 세대가 직면한 문제를 이해하고, 세대 차원에서 대책을 마련할 수 있는 ‘세대 감각’이 중요해진다. 이것이 수천, 수억 명의 개개인을 몇 가지 특징으로 묶는 세대론이 오류를 가지고 있음에도 우리에게 여전히 필요한 이유다. “젊은이들이 더 나은 삶을 살 수 있다는 믿음을 잃는 것에 대응하기 위해선 세대에 대한 이해, 즉 세대적 사고가 필수적이다.” 전 세계 300만명을 대상으로 한 데이터를 바탕으로 잘못된 세대 통념을 깨고, 주거와 교육 등 10가지 분야의 세대 문제를 담아낸 책. 한국 상황에도 그대로 겹쳐진다. 원제 The Generation Myt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