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품의 배신
제임스 햄블린 지음|이현숙 옮김|추수밭|280쪽|1만6000원
K팝과 K드라마의 위용에 잠시 가려져있지만, 전 세계 어디서도 경험해보기 힘든 체계적인 피부 관리 방법을 퍼뜨린 ‘K뷰티’ 역시 국위 선양의 핵심 축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의대에서 공중보건학을 전공한 의학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때를 밀고, 매일 샤워를 하는 생활 습관이 우리 몸의 면역체계에 나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그런 그조차 맨해튼의 한국식 피부숍을 방문한 뒤엔 K뷰티의 위대함을 이렇게 묘사한다. “직원은 내 얼굴에 탄력을 강화하는 펩타이드 성분이 포함된 ‘스킨 리파이닝 세럼’과 ‘퓨어 빔 럭스 오일’을 발랐다. ‘수퍼 리부트 리서피싱 마스크’와 ‘말차 푸딩 안티옥시던트 크림’을 쓴 뒤, 피부를 촉촉하게 하는 히알루론산을 담은 ‘글로우 시트 마스크’를 알려줬다. 부드러워진 피부를 보고 세상이 달라진 것처럼 느껴졌다. 황홀한 경험이었다.”
외국인의 시선에서 본 과장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주변엔 간단한 샤워를 해도 스킨, 에센스, 로션, 크림까지 동원하는 사람들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코로나로 목욕탕들이 문을 닫기 전까진 때를 밀어야 건강해질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다수였다. 의식(儀式)에 비견되는 한국의 미용 습관은 누군가에겐 황홀감을 느끼게 하지만, 동시에 이런 의문도 들게 한다. “피부 관리 제품이 없었을 때 사람들은 도대체 어떻게 살았지?”
“대다수 사람들이 인류사에서 본 적 없는 수준으로 위생과 청결을 실천하고 있다.” 청결은 우리의 몸을 지키기 위한 본능이지만, 현대는 ‘청결 과잉’의 시대라는 것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주장이다. 오늘날 일부 선진국들이 지나치게 깨끗한 사회가 되기 시작한 것은 20세기에 접어들 무렵, 각 나라 정부가 질병 예방을 위해 개인 위생을 강조하면서였다고 저자는 말한다. “위생 관념이 확산되자 단정치 못해 보인다는 것은 씻을 형편이 안 되는 것을 의미했다. 반면 옷을 빨아 입고 세수를 해서 단정하게 보이면 안전하다는 신호가 됐다. 외모와 위생은 의미가 겹쳐지기 시작했다.” 이후 위생 수준은 ‘아름다움’과 결부되며 사회적 지위를 의미하게 됐고, 사람들은 필요 이상의 깔끔함을 추구하게 됐다는 것이다.
제목 ‘거품의 배신’에서 가늠할 수 있듯, 우리가 미용과 청결을 위해 사용하는 제품들은 우리 몸에 이로움만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저자는 “역사적으로 세균에 노출되는 것은 과하게 씻기보다 훨씬 큰 위험이었다”고 위생의 중요성을 말하면서도, 과도한 청결함 추구로 인해 외부 바이러스의 공격을 막아줄 면역 체계가 훈련받지 못하게 됐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부유한 나라의 사람들은 인생의 9할 이상을 실내에서 보낸다. 실내 공기에는 우리 면역 체계를 외부 바이러스에 맞서도록 ‘훈련시키는’ 세균 입자가 적다. 또한 우리는 고도로 가공되고 세척된 음식을 먹고, 자연적으로 세균이 듬뿍 담긴 신선한 과일과 채소는 적게 먹는다. 세상으로부터 고립돼 세균에 노출되지 않아 인간의 자가 면역 질환이 늘어났다는 것이 저자의 말. 영국 전염병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1950년대 이후 지금까지 꽃가루 알레르기와 제1형 당뇨병, 천식 등의 자가 면역 질환의 발생률은 세 배 증가했다.
“위생은 약품과 비슷하게 생각해야 한다.” 항균 비누를 너무 자주 사용하면 피부 장벽이 무너져 습진과 염증을 일으키듯, 위생은 어떤 상황에서는 너무 중요하지만 지나치게 따라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 세상의 미생물들과 뒤엉켜 살아야 만성 질환을 예방하는 면역 체계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 실제 핀란드 헬싱키대에서 도시 개와 시골 개의 건강을 비교해 본 결과, 야외에서 시간을 많이 보내는 시골 개들이 도시 개들보다 알레르기 증상의 위험도가 훨씬 낮게 나타났다. 인간도 마찬가지다. 공기가 정화되는 고층 건물에서 살균 건조기를 쓰며 매일 영양제로 필수 에너지를 보충한다면, 우리 면역 체계를 자극하는 미생물 생태계가 유지될 수 없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반려 동물을 기르고, 주변의 녹지에 노출되어야 질병도 줄어든다. 야외에서 하는 운동은 헬스장에서 하는 것보다 혈압과 체지방률 개선에 효과적이라는 연구도 있다.
저자는 5년 이상 샤워를 하지 않고, 가끔 물로만 머리와 손을 씻으며 살아가고 있다고 말한다. 물론 몸 속 미생물 생태계를 유지하기 위해 저자처럼 극단적일 필요는 없다. 저자도 손 씻기는 건강을 위해 필수적이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미생물로부터 고립무원(孤立無援)이 된 신체는 호르몬 이상 작용으로 인해 더 많은 피부 질환과 알레르기가 발생한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K뷰티는 피부 표면의 뾰루지는 잠시 가려주어도, 신체 기저의 화학작용 문제까지 해결해주진 않는다. “우리는 무슨 제품을 소비하고, 어떤 환경에서 행동하는가?” 개인 위생이 절대적으로 강조되는 코로나 시기, 건강한 삶을 위해 한번쯤 되던져야 하는 질문이다. 원제 Cle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