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리 매킨타이어 지음 | 노윤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456쪽 | 2만2000원

최근 법무장관과 대통령이 늦은 밤 술자리에 있었다고 주장한 첼리스트가 자신이 거짓말을 했다고 경찰에 진술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이 의혹을 제기한 국회의원은 이후에도 ‘이 보도가 사실이라면’이라는 전제를 달아 유감을 표시했다. 국회는 원래 다양한 이견(異見)이 공존하는 곳이지만, 근거 빈약한 음모론은 발화자의 신뢰를 무너뜨릴 뿐이다. 이번 사건은 자신의 정치 신념에 따라서 뚜렷한 근거 없이 ‘믿고 싶은 것을 믿는’ 사람들이 결코 소수가 아니라는 점을 재확인했다.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과 즐겁고 생산적인 대화를 나누는 법.’ 제목부터 장대한 이 책의 핵심 주제는 자신과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대화하는 자세에 대한 것이다. 철학 박사학위를 받은 뒤 미국 보스턴대에서 철학과 과학사를 강의하는 연구원인 저자는 3년 전 국내 발간된 ‘포스트 트루스’(두리반)를 통해 현대 사회가 객관적인 사실보다 감정에 의해 휘둘리는 ‘탈진실(post-truth)’ 국면을 맞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번 책은 백신의 효능을 인정하지 않는 ‘백신 부정론’이나 지구의 기후 변화가 허구라고 주장하는 ‘기후 위기 부정론’ 등 과학을 부정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는 방법을 찾기 위한 현장 탐사기다. 저자는 사람들이 과학 부정론에 왜 빠지는지를 분석하고, 반대 진영에 위치한 사람들과 신뢰를 쌓는 방법에 대해 논한다.

기초적인 과학 상식을 거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 저자는 과학 부정론자 중에서도 가장 ‘중증’으로 여겨지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사람들에게서 힌트를 얻고자 했다. “저는 지구가 평평하다고 믿는 것이 부끄럽지 않습니다!” 2018년 미국 콜로라도주에서 개최된 ‘평평한 지구 국제 학회’엔 우주에서 촬영한 지구 사진은 조작되었고, NASA 직원들이 이러한 사실을 숨긴다고 믿는 600여 명의 회원이 앉아 있었다. 저자는 이틀 동안 이 학회 행사에 잠입해 이른바 ‘지구 평평론자’를 비롯한 과학 부정론자들이 어떤 사고 체계를 갖고 있는지를 밝혀내고, 또 이들에게 진실을 설득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저자가 관찰한 과학 부정론자들은 기본적으로 ‘체리 피커(cherry picker)’ 성향을 보인다. 케이크 위에 올려진 달콤한 체리만 골라 먹는 사람처럼,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증거만 수집하고 나머지는 무시하는 것이다. 또한 이들은 “증거의 존재 여부와 상관 없이 자신의 이론이 사실이라고 말하는 ‘음모론’을 핀다”는 것이 저자의 말. 진짜 전문가를 무시하고, 가짜 전문가의 말에 기대는 것도 과학 부정론자들의 특징이다. 전 세계의 과학 부정론자에게 통용되는 법칙이다. 이 과정을 통해 허무맹랑한 주장도 사실로 둔갑하게 되는 것.

지구 평평론자들을 다룬 다큐멘터리 ‘그래도 지구는 평평하다’(2018, 원제 Behind the Curve)의 한 장면. 유튜브 등을 통해 지구 평면설을 주장하며 지구 평평론자들의 ‘왕’으로 불리는 마크 서전트가 평면 지구 패널을 들고 있다. /유튜브 ‘Behind the Curve’ 캡처

저자가 만난 ‘지구 평평론자’들은 가족과 친구들의 따가운 시선은 물론, 직장에서 해고되는 등 자신의 신념에 대한 적지 않은 대가를 치러야 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왜 음모론을 고수할까. 저자는 그들이 살아온 인생 배경엔 ‘그럴 수밖에 없었던’ 경험들이 있었다고 지적한다. “이들이 부정론을 신봉해서 사회로부터 소외를 받게 된 것이 아니라, 그전부터 이미 외면받고 있던 사람들이라면? 지구 평평론자들 중엔 ‘9·11 테러’로 인한 상처를 갖고 있던 경우가 많았다. 개인적 비극이 세상의 모든 것에 의문을 품게 만든 사건이 된 것이다.” 음모론에 빠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지식이 부족해서라기보단 인생의 고난을 설명할 이유가 필요하기 때문이라는 것이 저자의 설명이다.

과학 부정론자들은 정치 진영을 가리지 않고 나타난다. 그동안 미국의 경우 과학 부정론은 흔히 보수 우파의 영역이라고 여겨져왔다. 기후 변화와 코로나 바이러스의 위험성을 여러 차례 과소평가했던 트럼프 전 대통령이 그 사례. 하지만 저자가 내린 결론은 “기후 변화 부정론은 주로 우파에게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모든 과학 부정론이 그렇지는 않다”는 것이다. 저자는 “GMO(유전자재조합식품)에 관해서는 대부분 진보주의자들이 부정론을 펼친다”고 말한다. 많은 진보주의자들이 살충제 사용과 탄소 배출을 줄였다는 GMO에 대한 긍정적인 연구 결과는 무시하고, 인간의 건강에 해롭다는 주장들에만 기대고 있다는 것이다. 경우에 따라선 ‘무엇을 믿는가’보다 ‘누구와 함께 믿는가’가 과학적 부정론에 빠져드는 더 중요한 요인일 수 있다.

저자는 과학 부정론에 빠진 이들의 생각을 바꾸기 위한 답이 결국 ‘대면’에 있다고 말한다. 상식 자체를 불신하는 이들에겐 건조한 사실을 전해주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저자는 “2019년 워싱턴주에 홍역이 발생했을 때, 공중보건 공무원들이 주민들을 방문해 몇 시간씩 백신 원리를 설명하며 접종을 설득해냈다”고 말하며 부정론자들을 설득하기 위해선 팩트보다 따뜻한 마음과 인내가 중요함을 역설한다. 뻔한 얘기처럼 들려도, 우리가 항상 잊고 있는 사실이다. 광화문과 서초동으로 이분(二分)됐던 우리 사회에 지금 필요한 것 역시 치밀한 논리보다는 대화와 경청일 것이다. 원제 How to Talk to a Science Denie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