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

임소연 지음|돌베개|243쪽|1만5000원

‘청담동 성형외과 코디로 3년간 일하면서 성형수술 당사자가 된 과학기술학자의 생생한 성형 탐사!’

이 책의 띠지에 적힌 홍보 문구다. 저자인 과학기술 연구자 임소연(45) 동아대 기초교양대학 교수는 서울대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 대학원생이던 2008~2010년 서울 청담동의 성형외과에서 3년간 환자들을 상담하는 ‘코디네이터’로 근무했다. 성형 강국 한국의 성형수술과 관련된 과학기술을 주제로 참여 관찰 연구를 하기 위해 인맥을 통해 취직한 것. 임 교수는 이 경험을 토대로 2012년 ‘성형수술 실행의 사물, 육체, 그리고 지식의 네트워크’라는 박사 학위 논문을 썼다. 이번 책은 그 논문을 바탕으로 한 에세이다. 지난 23일 부산 동아대 연구실에서 임 교수를 만났다.

공부밖에 몰랐던 지방 과학고 출신 서울대 여학생은 성형외과 코디가 되면서 ‘강남의 심장부’ 청담동에 입성한다. 외모를 중시하는 것은 천박한 것으로 여겨졌던 지성의 세계를 떠나 이른바 ‘얼평(얼굴 평가)’이 난무하는 낯선 세계로 진입하게 된 것. 의사를, 직원들을, 환자들을 인터뷰하고 수술을 관찰한다. 연구의 마지막 단계로 직접 수술대에 올라 양악수술을 받는다.

성형 괴물, 강남 미인, 의자매…. 성형 수술을 한 여성들은 이런 말들로 폄훼된다. 임소연 교수는 “성형 후 환자들은 육체적·심리적으로 큰 변화를 겪지만, 사회는 이에 대해 무지하고 무관심하다”고 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책에서 특히 강조되는 부분은 성형수술 환자에 대한 수술 후 관리나 환자의 수술 경험 개선에 필요한 지식 축적이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의료 현실이다. 성형수술에 대한 국내외 담론이 윤리적 당위성에 머무르고, ‘예뻐지기 위해’ 성형수술을 받은 환자들이 그 사실을 숨기는 데 급급하면서 부작용 등에 대한 의료기술 발전도 답보 상태라는 것이다. “성형수술이라는 주제를 통해 요즘 유행하는 ‘포스트 휴먼’이나 ‘인간 향상(human enhancement)’ 담론을 새로운 관점으로 생각하면 좋겠다. 성형수술은 가장 오래된 인간 향상 기술 중 하나다. 지적 향상, 노화 방지 등과 같은 인간 향상 기술에 대한 관심은 ‘이를 실행하는 것이 옳으냐 그르냐’는 윤리적 차원에 집중돼 있다. ‘이렇게 하면 인간됨이 사라져’라는 추상적인 논의보다 기술의 효과를 논의하는 게 현실적이라고 생각한다.”

성형수술에 대한 기존 연구는 대부분 동양 여성들이 백인 여성을 닮고 싶어 성형수술을 받는다고 비판해 왔다. 인종주의 이데올로기의 도구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부분적으로 일리 있는 이야기지만 임 교수는 이렇게 썼다. “한국 여성은 서양 여성의 큰 눈을 닮기 위해 쌍꺼풀 수술을 받는가? 아니요. 한국 여성은 서양 여성의 오뚝한 코를 닮기 위해 코수술을 하는가? 아니요. 21세기 한국 여성은 더 예뻐지기 위해서, 예쁜 한국 여성을 닮고 싶어서 성형수술을 받는다.”

23일 부산 사하구 동아대학교 인문과학대학에서 '나는 어떻게 성형미인이 되었나'의 저자 임소연 교수가 본지 인터뷰에 앞서 저서를 들고 포즈를 취했다/2022.11.23 김동환 기자

임 교수는 2010년 이후 새로운 성형 트렌드로 부상한 양악수술을 예로 들며 “양악수술 패러다임의 핵심은 미의 기준이 눈과 코에서 입으로 전환된다는 점에 있다”고 썼다. 눈이 크고, 코가 높다고 예쁜 것이 아니라 조화와 균형을 이루면서 어려 보이는 얼굴이 아름답다는 인식의 전환과 함께 외모에서 입매의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양악수술은 치료 목적으로 1950년대에 시작돼 상당히 많은 연구가 이루어졌지만, 서양에선 심미적 목적으로는 잘 시행되지 않는다.

연구를 위해 굳이 직접 수술까지 받을 필요가 있었을까? “참여 관찰을 중시한 프랑스 과학기술학 연구자 브루노 라투르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라투르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성형수술의 ‘블랙박스’를 열어 그 안의 것을 모두 묘사하고 싶었다. 성형외과에서 일하면서 볼 수 있는 건 어디까지나 수술실까지였다. 수술 이후를 볼 수 없었다. 환자들을 인터뷰할 수도 있었지만 완벽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다. 다 알려면 내가 받아보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성형이라는 주제가 가벼워 보일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이론으로 중무장한 ‘두껍고 무거운 책’을 내고 싶었다. 그렇지만 초고를 본 편집자가 많이 읽히고 싶다면 이렇게는 곤란하다며 고개를 내저었다. 결국 옛날 일기를 참고해 처음부터 끝까지 에세이 형식으로 다시 썼다. 계약한 지 6년 만에 완성했다. “성형 대국 한국에 성형수술 당사자의 이야기가 너무 없다. 그런 이야기가 계속 나오려면 일단 내 책이 많이 읽히는 게 중요하다 생각했다. 에세이스트 아닌 연구자가 사적인 이야기를 만천하에 드러낸다는 것이 부담이 컸다. 그렇지만 자기 경험을 토대로 소설을 써 온 아니 에르노가 노벨문학상을 받은 걸 보고 조금 용기가 났다. 성형외과 의사들이 많이 읽어줬으면 좋겠고, 이 책을 통해 ‘성형괴물’·‘강남미인’이라 폄하되는 또 다른 ‘성형미인’들과도 연결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