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 이불
안녕달 지음·그림 | 창비 | 68쪽 | 1만6000원
“할아버지, 할머니, 나 왔어!”
아이는 발목까지 빠지는 눈밭을 걸어왔다. 소복히 눈이 쌓인 책가방과 외투, 껴입은 옷과 양말은 방문을 열자마자 훌렁 훌렁 벗어던지고, 아랫목을 덮은 두꺼운 솜이불 속으로 머리부터 꼬물꼬물 기어들어간다. 이불 아래는 또 하나의 세계다. “안녕하세요!” 둥글둥글 푹신푹신해 보이는 곰들이 인사하는 아이를 반갑게 맞이한다.
반달곰은 수건을 돌돌 말아 ‘양 머리’를 한 채 드르렁 드르렁 코를 곤다. 개구리와 너구리, 두더지와 거북이 같은 크고 작은 동물들이 느긋하게 기대 앉아 귤을 까먹거나 쿨쿨 잠을 잔다. 아이는 절절 끓는 아랫목 방바닥을 ‘앗뜨뜨, 앗뜨뜨뜨’하며 까치발로 걸어간다. 저기 멀리 할머니 할아버지가 보인다. “그래, 우리 강아지 왔니?”
배고픈 다람쥐는 흰 곰 아저씨가 엉덩이로 쪄 낸 ‘곰엉덩이 달걀’을 볼이 불룩해지도록 먹어치우고, 아이는 할머니가 얼음판 밑에서 떠낸 ‘얼음할머니 식혜’가 너무 시원해 웃음을 터뜨린다.
소파에 앉아 각자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다 각자의 침대로 돌아가 잠드는 아파트 생활 이전, 우리의 겨울엔 온돌방 아랫목이 있었다. 어머니는 늦게 퇴근하시는 아버지의 밥그릇이 식지 않게 이불 밑에 묻어 뒀고, 가족들은 집에 들어온 순서대로 그 이불 속으로 파고 들어 언 몸을 녹였다.
수박이나 소라 속, 외계 행성과 유치원에도 사랑스러운 판타지 세계를 그려냈던 작가 안녕달의 열 번째 창작 그림책. 그림의 크기와 강약으로 책장을 넘기는 리듬감을 빚어내고, 카메라로 ‘줌 인’ ‘줌 아웃’ 하듯 독자를 상상 속에 빠뜨렸다 현실로 다시 끌어올리는 이야기의 힘이 대단하다. ‘수박 수영장’ ‘당근 유치원’ 등 전작에서 만났던 듯한 캐릭터들도 반갑다.
바깥 세상에선 찬 바람과 눈서리를 온몸으로 견뎌야 하는 겨울이지만, 이 이불 밑 세계에선 모든 생명이 공평하게 따뜻하다. 곤히 잠든 채 아빠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가는 아이의 마음처럼 부드럽고 편안한 그림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