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리의 역습

에드워드 챈슬러 지음|임상훈 옮김|위즈덤하우스|616쪽|3만3000원

미국 연준이 인플레이션 억제를 위해 금리를 큰 폭으로 올리고 세계 각국 중앙은행들이 동조 인상에 나서면서 집값과 주가가 급락했다. 국내 ‘영끌족(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로 투자)’이 순식간에 ‘영털족’(영혼이 다 털렸다는 뜻)이 됐다. 거품은 꺼지고 빚 부담만 남았다.

금리의 가공할 위력을 체감하는 이때에 신간 ‘금리의 역습’이 번역돼 나왔다. 저자 에드워드 챈슬러(60)는 미국 경제지 포천이 “생존한 최고의 금융사가 중 한 사람”으로 꼽은 영국인 저술가다. 학자는 아니고 투자은행 라자드브러더스, 미국 투자 기업 GMO에서 일했던 금융인 출신이다. 대학(케임브리지대)과 대학원(옥스퍼드대)에서 근대사를 전공했다. 1999년 저서 ‘금융 투기의 역사’를 필두로 2005년 ‘신용 크런치 타임’, 2022년 ‘금리의 역습’을 펴내 주목받는 금융 저술가가 됐다.

영어 원제는 ‘시간의 가격(The Price of Time)’이다. 금리를 ‘돈의 가격’이 아닌 ‘시간의 가격’이라고 제일 먼저 표현한 사람은 16세기 영국 외교관이자 판사 토머스 윌슨이었다. 금리는 일정 기간 돈을 사용하는 대가로 내는 요금이다. 즉 돈의 시간 가치가 금리인 것이다. 저자는 과도한 저금리가 기업 투자나 소비 촉진으로 이어지지 않고 생산성 둔화, 집값 거품, 부채 증가, 저축률 하락, 불평등 심화 등의 부작용을 야기한다고 역사적 논거와 실증 사례를 들어 설명해 나간다.

평범한 가계 수입으로는 따라잡을 수 없을 정도로 오른 금리의 압박. 저자는 “기록적인 초저금리가 중산층 감소, 주택 위기, 출산율 하락 등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주장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본문은 3부로 구성됐다. 1부는 화폐의 역사보다 더 오랜 이자의 역사를 훑어나간다. 이자는 기원전 8세기 화폐가 등장하기 전부터 씨앗과 동물을 빌려주면서도 있었다. 일종의 대출 문서였던 메소포타미아 점토판에는 채권자와 채무자 이름, 대출 액수, 대출 날짜 및 상환 기한, 이자 등이 기록돼 있다. 기원전 24세기 점토판에 보리 대출금리가 33.33%로 추산되는 기록들이 남아있다.

시사점을 주는 금리 논쟁이 17세기 영국에도 있었다. 연이은 흉작, 양모 산업 침체, 왕실 재정난에 영국은 연 10%이던 법정 최고금리를 6%까지 낮췄다. 당시 네덜란드가 번성한 것은 유럽 최저 금리(1.75%) 덕분이라며 영국도 금리를 4%까지 낮추자는 법안을 조시아 차일드 경이 1691년 하원에 제출했다. 이에 대해 정치사상가 존 로크는 네덜란드의 번영은 근면과 절약으로 일군 것이지, 그것이 부족한 사회에서는 금리를 낮춰봤자 경제는 못 살리고, 자산 인플레이션만 야기해 부자를 더 부자 만들고 대출은 급증하며 미망인과 고아 같은 취약계층만 희생된다고 일갈했다.

18세기 초, 오늘날과 비슷한 저금리 및 양적 완화 실험도 있었다. 스코틀랜드 출신의 존 로가 프랑스로 건너가 은행을 세우고는 마구 지폐를 찍어내 금리를 2%로 낮췄다. 동시에 프랑스령 루이지애나의 독점 거래권을 가진 미시시피 회사를 인수해 주가를 띄우면서 거대한 금융 권력으로 군림했다. 주가가 50배 폭등해 프랑스 전역에 투기 광풍이 일었는데 오래지 않아 주가가 폭락했다. 저금리와 풀린 돈 때문에 살인적 인플레이션이 프랑스 민생을 파탄냈다.

이런 역사적 고찰 위에 저자는 2·3부에서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의 해법으로 미국이 택한 초저금리의 위험성을 집중 조명한다. “2008년 이후, 또 하나의 커다란 부의 거품이 팽창했다”고 기술했다. 채권, 주식, 부동산, 암호 화폐 등 자산 가격의 광범위한 인플레이션이 엄청난 부로 이어졌다. 전후 수십 년간 미국 가계 재산은 GDP의 3.5배 정도였는데 2008년 이후 몇 년 만에 GDP의 5배 규모까지 불어났다.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저 금리만 낮췄을 뿐인데 그리 됐다.

비정상적으로 금리가 낮은 시기에 엄청난 재력가가 등장하는 것도 역사적으로 반복된다. 18세기 초 저금리와 주가 부양으로 당대 최고 부자로 잠시 등극한 프랑스의 존 로처럼, 연준 금리가 제로를 유지할 때 미국 아마존이 100배 이상 주가 수익률로 거래됐다고 저자는 꼬집는다. 반면 보통 사람이나 가난한 사람들은 ‘이지 머니’의 혜택을 거의 못 받았다. 2013년 미국 중위 가계의 부는 1969년 수준으로 되돌아갔고, 하위 20% 가구는 인플레이션을 감안하면 수입이 30년 전보다 적어졌다. ‘이지 머니’가 대거 풀리면서 가계, 기업, 정부는 빚더미에 앉은 금리 취약 구조가 된 것도 심각하다. 코로나 팬데믹에서도 초저금리 기조가 이어졌다. 기록적인 초저금리가 중산층 감소, 주택 위기, 출산율 하락 등 불평등을 심화시켰다고 저자는 문제 제기를 했다.

616쪽 분량 가운데 각주만 무려 95쪽이다. 그만큼 참고문헌과 인용이 많다. 역사적 통찰도 돋보이지만, 금융·경제 서적이면서 딱딱하지 않고 비교적 쉽게 읽힌다는 점도 장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