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
하이노 팔케·외르크 뢰머 지음|김용기·정경숙 옮김|에코리브르|376쪽|2만5000원
“이것이 최초의 블랙홀 사진입니다.”
2019년 4월 10일 벨기에 브뤼셀의 기자회견장. ‘사건 지평선 망원경(Event Horizon Telescope∙이하 EHT)’ 협력단의 EU 대표 하이노 팔케(57) 네덜란드 라드바우드대 천체물리학 교수가 붉은 도넛 모양의 블랙홀 사진을 공개했다. 우리가 ‘인터스텔라’와 같은 영화 등에서 접해온 블랙홀 이미지는 모두 이론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상상’. 미지의 영역에 있던 블랙홀의 모습이 이날 비로소 드러난 것이다.
EHT 연구는 전 세계에 퍼져 있는 전파 망원경을 하나로 연결해 지구 크기의 ‘가상 망원경’을 만들어 블랙홀의 이미지를 포착하려는 국제 협력 프로젝트다. 2017년 4월 칠레∙하와이에 2대씩, 스페인∙멕시코∙미국 애리조나∙남극에 1대씩 총 8개의 망원경이 우주의 동일 지점을 응시하며 블랙홀을 관찰했다. 5일간의 관측 동안 쌓인 데이터만 3.5페타바이트(PB). 1페타바이트는 6기가바이트짜리 영화 약 17만4000편이 담기는 크기다. 연구진은 2년 동안 이 각 망원경의 관측 데이터를 결합하고 이미지화했다. 그 결과 지구에서 5500만 광년 떨어져 있으며, 태양 질량의 65억 배에 달하는 블랙홀 ‘M87*’의 이미지를 얻어냈다. 그리고 작년 5월 12일 EHT 협력단은 다시 한 번 블랙홀 사진을 공개했다. 지구로부터 약 2만7000광년 떨어진, 우리 은하 중심에 위치한 블랙홀 ‘궁수자리 A*’이다.
아스라이 멀게 느껴졌던 우주의 비밀에 가까워지고 있다. 한국 연구진도 참여한 EHT 프로젝트는 현재 관측한 블랙홀을 정밀 분석하는 과정에 있다. 블랙홀의 실체를 밝히기 위한 20여 년의 여정을 책에 담은 하이노 팔케 교수를 서면으로 만났다.
-현재 인간은 블랙홀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가. 숫자로 표현한다면.
“우리는 현재 50% 지점을 넘어서고 있다. 하지만 블랙홀 근처엔 또 다른 미지의 가능성이 숨어있을 수 있다. 그렇게 되면 다시 0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우리 은하보다 훨씬 멀리 떨어진 M87 은하의 블랙홀을 먼저 관측한 이유는.
“M87*은 크기가 더 크고 블랙홀 주변의 가스와 빛의 변동이 크지 않기 때문에 관찰하기가 더 쉽다. 반면 우리 은하의 블랙홀 궁수자리 A*은 크기가 더 작기 때문에 주변의 가스와 빛의 회전 주기가 빠르다. 우리 은하의 블랙홀을 찍는 것은 절대 가만히 앉아 있지 않는 유아(幼兒)를 대상으로 긴 노출 사진을 찍는 것과 같다.”
-현재 블랙홀 사진의 선명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은.
“전 세계에 전파 망원경을 몇 개 더 추가할 수 있고, 더 높은 관측 주파수를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우주로 전파 망원경을 보내 지구보다 더 큰 가상 망원경을 만드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다.”
-블랙홀 안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알 수 있나.
“나는 블랙홀을 ‘지옥의 문’에 비유한다. 이론적으론 블랙홀에 빠져도 살아남아 우주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볼 수도 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에게 연락해 당신이 살아있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일반상대성이론에 따르면 블랙홀로 들어가는 것은 블랙홀 안에 머무른다. 우리가 관측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기만 하면 된다. 블랙홀은 이 세상과는 다른 저쪽 세계, 즉 일종의 내세(來世)다.”
-사건 지평선(블랙홀로 빨려 들어가는 경계지대) 너머로 빨려 들어가는 물질은 평생 블랙홀 안에 머무르나.
“스티븐 호킹은 오랜 시간 후에 블랙홀이 소멸할 수 있다는 이론(호킹 복사∙Hawking radiation)을 제시했다. 하지만 그것이 사실이어도, 블랙홀 밖으로 나오는 것은 우리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작은 조각들로 모든 것이 태워진 연기(煙氣) 형태일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온전히 블랙홀을 빠져나오긴 어렵다.”
-현재의 블랙홀 연구가 갖는 가능성에 대해 설명해달라.
“우리 세계의 원리를 설명하는 양대 기둥, 일반상대성이론과 양자 물리학은 물질과 시공간을 설명하는데 기본적으로 상충하는 부분이 있다. 우리는 블랙홀 연구를 통해 이 두 이론을 어떻게 통합할 것인지를 살펴보고 있다. 이 미스터리를 풀기 위해선 상상 이상의 거대한 망원경이 필요할 수도 있다. 어쩌면 답은 우리 바로 앞에 놓여있는지도 모른다.”
-블랙홀 관측 과정에서 겪은 가장 큰 난관은.
“(이론적으로) 블랙홀을 보는 것이 가능해 보였음에도, 실제 관측은 여전히 너무 멀게 느껴져서 ‘블랙홀을 경험하지 못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 때가 많았다. 처음 블랙홀 이미지를 봤을 땐 공포감과 겸허함을 동시에 느꼈다. 어렸을 때부터 난 항상 침대에 누워 우주 너머에 무엇이 있을지 상상해왔다. 짜릿한 순간이었다.”
-창조과학자가 아님에도, 신의 존재를 주장했다.
“그렇다. 나는 기독교인으로서 신을 믿는다. 과학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알려주지만, 우리가 알 수 없는 것도 알려준다. 과학은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에 대한 철학적 질문에는 다가가지 못했다. 블랙홀의 내부와 우주의 기원, 그리고 신은 측정할 수 없는 것이다. 그 무지(無知)의 간극을 채우는 것이 신의 존재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블랙홀 연구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나.
“우리가 함께 노력하면 놀라운 것들을 볼 수 있다는 것. 바로 그 사실을 배울 수 있다. 그리고 우리의 지식엔 근본적인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사건의 지평선, 즉 빛과 물질이 사라지는 지점을 볼 수 있다. 이 경계는 불과 몇 십 년 전만 해도 수학적인 호기심에 머물렀다. 지금은 측정이 가능해졌지만, 이는 역설적으로 인간이 ‘모든 것’을 측정할 순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블랙홀은 시공간의 원리를 설명해줌과 동시에, 우주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신비한 지역이 있음을 말해준다.”
그는 블랙홀을 탐구해 온 지금까지의 여정을 회고하며, 책의 마지막 구절을 이렇게 썼다. “우리 인간은 헤아릴 수 없는 광대한 공간을 떠도는 먼지 알갱이 위에 앉은 먼지 알갱이일 뿐이다. 그러나 우주에 감탄하고 질문할 수 있다. 우리는 이 세상을 믿고, 희망하고, 사랑할 수 있다. 그것이 우리를 아주 특별한 별 먼지로 만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