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간 '다윈의 사도들'을 펴낸 이화여대 최재천 교수. /오종찬 기자

다윈의 사도들

최재천 지음|사이언스북스|476쪽|2만2000원


‘이기적 유전자’를 주장한 진화생물학자 리처드 도킨스, DNA 이중나선구조를 발견한 생물학자 제임스 왓슨, ‘빈 서판’과 ‘우리 본성의 선한 천사’를 쓴 진화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에게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다윈의 사도’를 자처한다는 점이다. 한국의 대표 진화생물학자 최재천(69) 이화여대 에코과학부 석좌교수가 이들을 포함한 다윈의 학문적 후계자 12명과 연쇄 인터뷰를 했다. 신간 ‘다윈의 사도들’(사이언스북스)은 그 결과물.

다윈이 ‘종의 기원’을 펴낸 것이 1859년이다. 8일 최재천 교수를 만나 160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다윈의 진화론이 의미 있는 이유를 물었다.

-’열두 명의 사도’를 다루는 이 책을 어떻게 기획했나.

“ ‘종의 기원’ 출간 150주년이었던 2009년부터 12명의 석학과 연쇄 인터뷰에 나섰다. 흔히 20세기를 바꾼 사상가로 프로이트, 마르크스, 다윈을 꼽는다. 다윈은 세 명 중 유일하게 이론의 설득력이 점점 강해지고 있는 인물이다. 작년 노벨생리학상을 받은 스반테 페보 교수 역시 진화학자다. 행동경제학∙진화경제학은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경제학 내에서 비주류였지만, 최근엔 행동경제학자가 노벨상을 받을 정도로 주류가 됐다. 스티븐 핑커 같은 석학은 심리학 전체가 과학에 기반을 둔 진화심리학적인 학문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국에선 다윈 이론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충분히 높지 않았다. 진화론의 현대적 의미를 알리고자 이 기획을 시작하게 됐다.”

-진화론에 대해 설명해달라. 다윈의 핵심 아이디어는 무엇인가.

“세상의 모든 것은 변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이다. 변화를 일으키는 변이(變異)들 간 경쟁관계에서 누군가는 번식에 더 성공하고 누군가는 덜 성공하는데, 생물학에선 이를 ‘차등번식’이라고 설명한다. 번식을 많이 한 개체들은 더욱 존재감이 커지고, 시간이 지나면서 그 상태에서 또 다른 변화가 일어난다. 단순하지만 모든 세상사에 적용되는 논리다.”

인간의 진화 과정을 표현한 이미지. 최재천 교수는 “현재의 모든 생물이 자연계의 법칙을 따라 탄생했다는 것을 받아들일 때 인간은 겸허한 마음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석학들을 ‘열두 명의 사도’라고 표현했다.

“ ‘예수의 12 사도’에 빗댄 비유적 표현이다. 예수의 제자들은 각기 예수의 말을 해석하고 전파하면서 지금의 기독교를 만들었다. 다윈의 진화론을 따르는 제자들이 다윈 사후 진화론을 재해석하면서 더 발전시켰다는 의미에서 명명했다.”

-다윈 진화론에 대한 해석이 학자들마다 다르다는 말인가.

“자연선택이 개체 단위에서 발생하는지, 집단 단위에서 발생하는지를 두고 펼쳐지는 공방이 대표적이다. 나는 리처드 도킨스와 대니얼 데닛 같은 학자의 의견처럼 한 개체가 가지고 있는 유전자 단위에서 자연선택이 벌어진다고 본다. 자연선택이 집단 단위에서 벌어지려면 집단의 운명이 개체 운명보다 막강해야 하는데, 현실에선 그런 경우가 많지 않기 때문이다. 나의 지도교수였던 하버드대 에드워드 윌슨 교수는 반대 입장이었다. 세부적 해석은 이렇게 다를 수 있지만, 진화학이 종의 변화와 생태 문제에 있어 일관된 설명을 제공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2023년에 다윈의 의미는.

“다윈은 인간을 철저히 겸허하게 만들었다. 기독교와 서양철학은 인간은 특별한 존재라고 했다. 다윈은 진화론을 통해 인간이 다른 동물과 다를 것 없다고 했다. 인간이 침팬지와 공통 조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 우리가 다른 존재와 다르지 않다는 사고는 우리를 겸손하게 한다. 기후 변화∙생물 다양성 감소∙코로나 유행…. 현재 지구적 위기의 근원에는 ‘특별한 존재인 인간이 지구를 지배한다’는 관념이 있다. 생태 문제를 바라보는 진화론의 관점은 ‘나는 다르다’는 착각에 빠진 인간이 환경에 반하는 ‘생태적 죄’를 짓고 있다는 것에 가깝다.”

-가장 인상적인 학자는 누구였나.

“처음 만났을 때 리처드 도킨스의 표정이 잊혀지지 않는다. 귀찮은 내색을 하며 마치 잡상인을 대하는 것처럼 보더라. 질문엔 단답으로 일관했다. ‘안 되겠다’ 싶었다. 당신의 최근 작 ‘만들어진 신’에서는 냉철한 지성이 보이지 않는다. 당신이 쓴 것 같지 않다는 도발적인 질문을 던졌다. 그때부터 도킨스의 답변이 길어지기 시작했다. 한 시간으로 예정됐던 인터뷰가 네 시간이 됐다.”

-2009년 진행한 인터뷰가 책으로 나오기까지 14년이 걸렸다.

“진화학은 자연과학이지만 철학적이고 논리학적인 성격이 많다. 이를테면 ‘진화는 진보인가’라는 물음에 진화학자들 사이에서 의견이 갈린다. 시간이 지나며 학자들의 표현이나 입장 또한 조금씩 다듬어지게 되는데, 대담 내용을 확인받는 과정에서 ‘달리 생각해보고 싶다’며 그들의 주장도 진화를 하더라(웃음). 또 인터뷰 이후에도 몇 번씩이나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내용을 보충한 학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