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370만을 기록한 소설 ‘인간 실격’ 관련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유튜브

“우연히 유튜브에서 ‘구의 증명’이라는 제목의 플레이리스트(음악 재생 목록)를 듣다가 너무 좋았어요. 집에 오는 길에 책을 사서 앉은 자리에서 두시간 만에 다 읽었어요.”

작가 최진영(42)이 2015년 발표한 소설 ‘구의 증명’은 해가 갈수록 판매량이 늘어나는 책이다. 출판사 은행나무는 “2020년까지 2만부 나갔는데 2021년 2만500부, 2022년에는 5만5000부가 나갔다”고 했다. 줄여서 ‘플리’(플레이리스트)라고도 부르는 유튜브 음악 재생 목록 덕을 톡톡히 봤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현정 교보문고 베스트셀러 담당은 “‘구의 증명’뿐 아니라 2021년 조용히 인기였던 ‘인간 실격’ 역시 유튜브 플레이리스트 덕을 봤다”고 했다.

플레이리스트는 특정 분위기나 콘셉트의 곡들을 모아 놓은 것이 특징이다. ‘힐링’ ‘팝송’ ‘노동요’ 등 여러 갈래가 있는데, 특정 책 분위기와 비슷한 음악을 그림과 함께 모아놓은 영상이 히트를 친 것이다. 보통 플레이리스트는 책 읽으며 듣기 좋은 연주곡 위주로 선곡한다. 소설 ‘인간 실격’ 관련 플레이리스트는 일본 뉴에이지 그룹 ‘어쿠스틱 카페’의 연주곡 6곡을 반복 재생한다.

‘구의 증명’ 관련 플레이리스트는 2021년에 만들어진 것과 지난 1월에 생성된 것이 각각 조회 수 26만, 33만회를 기록하고 있다. 책 판매는 2021년 무렵부터 급증하기 시작했다. 은행나무 관계자는 “1월 말 최진영 작가가 이상문학상을 받으면서 지난달까지 3만부가 더 나갔다”고 했다.

‘인간 실격’도 비슷한 사례다. ‘부끄럼 많은 생애를 보냈습니다’라는 작중 대사를 제목으로 한 2021년 플레이리스트는 조회수 370만을 기록했다. 4000개 가까이 달린 댓글에는 ‘이 플리 덕에 책을 읽었다’ ‘멜로디만으로 주인공 감정이 느껴진다’ ‘최고의 작품’이라는 내용의 댓글이 수두룩하게 달렸다. 이해 ‘인간 실격’은 민음사 해당 판본 출간(2004년) 이후 최고 판매량인 7만부를 찍었다. 직전 해보다 3배 가까이 늘어난 수치였다. 당시 출판사도 뾰족한 인기 요인을 짚어내지 못했는데, 배경에 플레이리스트가 있었던 것이다.

음악 재생 목록에 불과한 플레이리스트는 유명 인플루언서의 책 소개와 다른 강점이 있다. 대부분 광고 콘텐츠가 아니라는 것이다. 출판사에 책 소개를 해준다고 돈을 받지도 않고, 플레이리스트 조회 수가 늘어난다고 해당 유튜버가 돈을 벌지도 못한다. 유튜브 정책에 따라 광고 수익은 플레이리스트로 사람들이 듣는 음악 저작권자에게 돌아간다. 한 출판사 편집자는 “몇 백만원씩 들여 유튜버와 찍은 광고형 콘텐츠에 독자들이 피로감을 느끼고 있다”며 “플레이리스트의 책 추천은 광고가 아니고 댓글에서 여러 이용자가 자발적으로 해당 책을 읽어보라고 홍보하면서 소문 효과를 누린다”고 했다.

이런 ‘플리 효과’는 감성적인 음악과 함께 읽을 때 상승 효과를 일으키는 소설과 감성 에세이류에서 주로 발견된다. 인문사회 서적이나 경제경영 등 자기계발서를 테마로 한 플레이리스트는 잘 만들어지지 않을뿐더러 있더라도 조회 수가 높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