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호연 작가에게 ‘불편한 편의점’은 자신의 마지막 소설이 될 수 있었던 작품이었다. 그는 “남에게 민폐 끼치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다 보면, 한 번은 기회가 온다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고운호 기자

2022년 출판 시장은 ‘불편한 편의점’(나무옆의자)의 한 해였다. 작년 한 해 동안 교보문고와 예스24에서 가장 많이 팔린 ‘올해의 책’에 선정된 소설은 현재까지 1∙2권을 합쳐 약 140만부가 판매됐다. 100만 부 이상 판매된 ‘아몬드’(창비) ‘달러구트 꿈 백화점’(팩토리나인∙총 2권) 이후 최고 인기 도서다. 서울 청파동 골목의 작은 편의점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은 노숙인 출신 주인공이 동네 주민들의 희로애락이 담긴 사연을 전하는 이야기. 미국∙프랑스∙일본을 비롯한 해외 15국에 판권이 수출되는 등 세계적인 인기를 끌었고, 이후 국내에선 ‘불편한 편의점’과 비슷한 건물 표지에 따뜻한 이야기를 담은 소설들이 연이어 출간되며 ‘K힐링소설’이라는 새 장르를 만들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작품의 흥행은 곧 작가 김호연(49)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최근 출간된 ‘김호연의 작업실’(서랍의날씨)은 그가 ‘불편한 편의점’을 쓰기까지의 글쓰기 기록이 담긴 책. 22일 그를 만나 베스트셀러 탄생 뒷이야기를 물었다.

김호연은 자신의 정체성을 소설가가 아닌 ‘스토리텔러’로 정의한다. 그는 고려대 국어국문학과 졸업 후 2001년 영화 시나리오 작가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뒤, 2003년 출판사 편집자가 되어 소설을 다루기 시작했다. 인터넷 소설가 귀여니의 ‘그놈은 멋있었다’ 만화를 편집했고, 이후 해외 장르 소설들을 편집하며 대중 소설을 쓰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한다. “독자들은 다양한 이야기를 즐기고 싶어 하는데, 한국 문학계는 순수 문학 중심이라는 것을 느꼈죠. 2000년대 중반 히가시노 게이고나 기욤 뮈소의 소설이 한국에서 성공하는 것을 보면서, 미스터리∙휴먼드라마∙SF 같은 장르 소설을 직접 써보자는 생각을 했어요.” 그렇게 서른세 살의 나이에 출판사를 그만두고, 인천에 보증금 1000만원·월세 10만원 작업실을 구해 소설 집필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후 펼쳐진 것은 14년의 무명 생활이었다. 2013년 ‘망원동 브라더스’(나무옆의자)로 세계문학상을 수상하며 잠시 대중의 관심을 얻었으나, 후속으로 쓴 세 편의 장편 소설이 모두 외면당했다. “히가시노 게이고를 잡아보겠다는 각오로 쓴 ‘파우스터’(위즈덤하우스∙2019년 출간)마저 부진했을 땐, ‘재밌는 얘기는 독자들이 알아줄 것’이라는 비전이 흔들리더라고요. ‘난 소설을 쓰면 안 되는구나’ 생각이 들어 너무 힘들었죠. 생계를 위해 병행했던 시나리오 작업에 매진해야겠다는 생각이었어요.”

하지만 시나리오에 골몰할수록 소설에 남은 미련이 피어올랐다. 특히 ‘불편한 편의점’이라는 제목이 머리에 맴돌았다. “대학 때부터 사회운동만 하던, 인상도 강하고 말투도 거칠던 선배가 편의점을 열었다고 하더라고요. 평생 접객이라곤 해 보지 않은 선배였기에 ‘그곳은 불편한 편의점이겠다’는 생각을 하고 방문해 보니, 자본주의에 충실한 친절한 점주가 되어 있는 거예요(웃음). 소설을 그만두려고 하니 그 여섯 글자가 아른거리더라고요.” 그렇게 책이 나온다는 확신도, 계약금도, 마감도 없는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 올해 연극과 드라마로까지 제작되는 이야기의 탄생 비화다.

그는 글쓰기를 지난한 참호전에 비유한다. ‘고립’은 그의 글쓰기 제1 원칙이다. “글쓰기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이더라고요. 초고를 쓰는 3~4달 동안은 지방에 작업실을 구해 작업해요. 아내와도 2주에 한 번 만날 정도로 사람들과의 접촉을 줄이죠.” 작업실에선 주로 영국 브릿팝과 록으로 구성된 ‘노동요’를 들으며 글을 써내려간다. “소설을 쓰는 상상력도 고립에서 나오더라고요. ‘불편한 편의점’은 호프집 아르바이트 시절 접객 경험과 편의점 취재 내용을 조합해 만든 이야기예요.”

이야기꾼으로 살 길을 찾기까지 14년이 걸렸다. “‘불편한 편의점’ 성공 이후 압박도 물론 있지만, 제 글쓰기는 달라진 게 없어요. 소설의 세계관을 재밌게 즐기고, 그 안에서 타인에 대한 공감을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는 바람으로 항상 쓰죠. 그게 제가 잘할 수 있는 장르입니다. 이제 독자들과 소통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났으니, 까불지 않고 독자들 사랑에 보답할 겁니다.”

◇김호연이 말하는 ‘나의 작업실’

나를 견디게 해준 문장

“글쓰기는 한번 배우면 반복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자동차 정비와는 다르다. 훌륭한 글을 쓰기 위해선 새 시나리오를 쓸 때마다 글쓰기를 배운다는 심정으로 임해야 한다.” - 켄 댄시거 미 뉴욕대 영화학과 교수의 책 ‘얼터너티브 시나리오’(커뮤니케이션북스) 중에서.

이럴 땐 이런 노래

‘노동요’는 글쓰기의 추동력이 된다. 감정이 깊은 대사를 써야 할 때는 영국 가수 아델의 앨범 ‘19′ ‘21′ ‘25′를 듣는다. 퇴고할 때 주로 듣는 음악은 미국 록밴드 위저의 ‘Weezer(Green)’. 영국 밴드 오아시스의 앨범 ‘타임 플라이스(Time Flies)’는 감정을 고양시킨다. 정말 글이 안 풀릴 때 꺼내 듣는 ‘필살기’다.

독자와 함께 읽고 싶은 소설

최고의 소설 공부는 소설 읽기다. 스콧 스미스가 쓴 ‘심플 플랜’(비채)은 범죄 스릴러 플롯 속에서 인간성이란 주제를 깊이 파고든다. 사라 헤이우드의 ‘캑터스’(시월이일)와 차무진의 ‘인더백’(요다)도 추천한다. ‘캑터스’에선 캐릭터 설정을, ‘인더백’을 통해선 장르를 자유자재로 활용하는 스토리텔링의 힘을 배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