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의 사회사
조석연 지음|현실문화|312쪽|1만6000원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
오후 지음|동아시아|324쪽|1만6500원
최근 인터넷에는 ‘마약 체험’ ‘마약 후기’ 같은 마약 관련 게시물이 쏟아지고 있다. 자극적인 마약 관련 콘텐츠가 인기를 끌고, 또 일반인에게 익숙해졌기 때문이다. <본지 4월 14일 자 A1면>
◇“일제, 조선을 아편 생산 기지로 삼아 재원 확보”
한국 근현대사 연구자인 조석연 신한대 교수가 쓴 ‘마약의 사회사’(2021)에 따르면 일본은 ‘마약 청정국’ 조선을 망가뜨렸다. 양귀비를 원료로 하는 아편은 전통사회의 대표적인 마약. 그렇지만 조선은 본디 아편의 소비와 생산이 많은 나라가 아니었다. 헌종 때 청국에 다녀오며 아편 흡연 기구를 국내에 들여오다 발각된 동지사(冬至使) 화원(畵員) 박희영을 추자도로 유배해 평생 종으로 살도록 벌할 정도로 아편 흡연에 대한 경계가 심했다.
저자는 “일제강점기에 접어들며 상황이 변했다”고 분석한다. 일제는 식민지 재원 확보를 위해 조선을 아편 생산 기지로 삼았다. 지질과 기후가 양귀비 재배에 적당하고, 토지와 노임이 비교적 저렴하며, 아편 중독 피해가 적었기 때문이다. 일제는 아편 생산과 매매를 관장해 일본이 지배하던 타이완과 관둥저우 등지로 수출했다. 거둬들인 아편을 대정제약주식회사에 불하해 전쟁 중 활발히 수출했던 의약용 모르핀의 제조를 독점하게 했다. 그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조선 내 아편 중독자가 양산되었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광복 직후 일제가 남기고 간 마약은 약 1만1400㎏의 생아편과 약 9980㎏의 모르핀 등. 시가로 약 20여 억원에 달한다. 이 중 절반가량만 회수됐고, 회수하지 못한 상당량의 아편은 일반인에게 유통됐다. 1949년 전국 마약 중독자 수는 적게는 12만명에서 많게는 18만명까지 추산된다. 서울시 조사에 따르면 1948년 서소문동에만 아편굴 57개소가 영업 중이었다.
◇”’마약 음료’에 탄 필로폰, 1980년대부터 유행”
최근 우리 사회에 충격을 안긴 ‘대치동 학원가 마약 음료 사건’에서 용의자들이 “집중력 향상에 좋다”며 학생들에게 건넨 음료에 탄 마약은 필로폰이다. 조석연 교수는 “흔히 ‘히로뽕’이라고 불리는 필로폰이 한국에서 사용되는 마약의 주류로 부상한 건 1980년대”라고 말한다. 직전인 1970년대엔 대마초가, 1950~1960년대엔 모르핀, 헤로인 등 아편계 마약이 유행했다.
‘히로뽕’은 1941년 일본 다이닛폰제약주식회사에서 생산된 각성제 이름이다. 정확한 성분명은 메스암페타민으로, 1888년 도쿄대학 의학부 나가이 나가요시 박사가 천식 치료제인 마황에서 에페드린을 추출하는 과정 중 발견했다. 졸음과 피로감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고 알려져 제2차대전 시기 참전 병사, 일본 내 노동자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한다. 일본 정부는 1949년 허가받지 않은 각성제 제조를 금지하는 등 단속에 나섰지만 폭력단을 중심으로 전국적 밀조가 계속 이루어졌다.
일본 제조업자들은 적발 위험을 피하려 가깝고 인건비 낮은 한국에서 필로폰을 밀조해 일본으로 되가져가는 방법을 택했다. 1980년대 초반까지 한국은 일본의 필로폰 제조지로 기능했다. 이후 아시안게임·올림픽 등을 계기로 한·일 양국이 양국 간 필로폰 밀매매 단속 강화에 나서면서 한국산 필로폰 일본 수출길이 서서히 막히고 한국 내에서 풍선효과가 일어난다.
필로폰은 일본과 가까운 부산에서 유행하기 시작해 서울로 유입됐다. 1981년 통금이 해제되고 1982년 유흥업소 규제가 풀린 것도 필로폰 사용을 부추겼다. 1980년대 대도시 지역 유흥가에선 손님들에게 필로폰을 술에 타 주었고, 청소년들도 오락실 등에서 ‘술 한잔’ 달라고 말하면 몇천원 가격으로 주사 가능했다. 1980년 전체 마약류 사범의 10.5%에 불과했던 필로폰 사용자는 1986년 52.9%로 과반을 차지하고 1988년엔 84.2%에 이르게 된다.
◇”신규 마약 사용자 대부분 30대 이하”
“전세계 마약 시장의 절대 강자는 대마다. 약 70%의 마약 사용자가 대마를 사용한다. 세계 평균을 따르자면 대마 사범이 가장 많아야 하는데, 한국은 특이하게도 메스암페타민 사범이 가장 많다.”
1만5000부 팔린 대중서 ‘우리는 마약을 모른다’(2018년 출간, 2023년 개정증보)의 저자 오후는 ‘한국이 과연 마약 청정국인가?’ 물으며 이렇게 말한다. 의존성과 위험성이 비교적 낮은 ‘소프트 드러그(soft drug)’인 대마초 사용자에 비해 ‘하드 드러그(hard drug)’로 분류되는 필로폰 사용자가 압도적으로 많다는 건 우리 사회의 마약 중독 수준이 이미 위험치를 넘었다는 방증이라는 것이다.
최근 마약 거래가 주로 소셜미디어와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면서 신규 마약 사용자 대부분이 디지털 문화에 익숙한 30대 이하라는 사실도 마약 중독 사회로의 진행을 부추긴다. 2021년 미국 내 청년층(18~45세) 사망 원인 1위는 마약성 진통제인 펜타닐 중독이었다. “한국이 아니라 인터넷에서 사는” 우리 젊은 세대의 이야기가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는 저자의 경고가 섬뜩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