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학 미-중 특강
마리아 에이들 캐러이·제니퍼 루돌프·마이클 스조니 엮음|함규진 옮김|미래의창|520쪽|2만3000원
미·중 항모가 대만해협에 출동해 200해리(약 370㎞)를 사이에 두고 대치했는데, 대만에서 정말 전쟁이 일어나나? 인구가 줄고 고령화에 직면한 중국이 미국을 제치고 세계 1위 경제 대국이 될 수 있을까? 미·중 기술 경쟁은 우리에게 위기인가, 기회인가?
미·중 관계를 둘러싼 묵직하면서도 이해가 쉽지 않은 뉴스가 하루가 멀다하고 쏟아진다. 분석과 전망은 많지만 하나같이 점쟁이가 점을 치는 듯 아리송하다.
‘하버드대학 미-중 특강’은 실타래처럼 얽힌 미중 관계의 이면을 풀어 보여주기 위해 미국 하버드대학이 기획해 만든 책이다. 원제는 ‘The China Questions 2′. 미국 내 중국 관련 석학과 전문가 54명에게 46개의 질문을 던져서 받은 원고를 모았다. 질문은 미·중 관계 역사와 세계 질서, 경제, 군사, 문화, 보건 등으로 폭넓게 걸쳐 있다.
◇무너진 미국의 기대
1972년 리처드 닉슨 대통령의 중국 방문으로 시작된 미·중 협력 관계는 세계사적인 변화를 이끌어냈다. 미국은 이를 지렛대로 소련을 견제하는 데 성공했고, 중국은 정치 제도 개혁과 개혁·개방을 통해 경제성장의 길로 들어섰다.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은 중국 경제에 고성능 엔진 역할을 했다. 성장률을 한층 끌어올려 2010년 일본을 제치고 세계 2위 경제 대국이 됐다.
당시 미국에는 중국이 경제적으로 성장하고 부유해지면 자연스럽게 민주적인 국가로 변모할 것이라는 기대가 있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에서 국무부 차관을 지낸 로버트 졸릭 전 세계은행 총재는 2005년 한 포럼에서 “중국은 정부가 국민에게 의무를 다하고 책임을 지는 나라로, 평화적으로 바뀌어갈 필요가 있다”고 했다. ‘책임감 있는 동업자’가 될 것으로 기대한 것이다.
이런 기대는 2012년 시진핑 주석 집권 이후 무너졌다. 중국은 마오쩌둥 시대를 방불케 하는 권위주의 체제로 회귀했고, 대외적으로는 주변국을 거칠게 압박하는 공격 외교로 일관했다. 2020년에는 “50년 동안 홍콩 기존 체제를 보장한다”는 덩샤오핑의 일국양제(一國兩制) 공약을 깨고 홍콩을 통합했다. 2050년까지 군사, 경제,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강대국이 되겠다고 천명하며 미국을 자극했다. 고도성장 후 민주 국가로 변신할 것이라는 기대와 달리 과거 공산당 체제로 돌아가 옛 소련처럼 미국을 위협하는 존재가 된 것이다.
◇초당파적인 반중 정서
2018년 트럼프 행정부가 시작한 무역 전쟁부터 조 바이든 행정부의 기술 전쟁에 이르는 미국의 대중 압박 정책에는 이런 배경이 있다. 중국에 우호적이었던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머스 프리드먼조차 “중국은 이제 과거처럼 값싼 티셔츠 만들어 파는 나라가 아니지 않으냐? 국제사회 규칙을 지켜야 한다”고 짜증을 낼 정도로 미국 내 반중 정서는 초당파적이다.
“미·중 관계는 필요하다면 경쟁하고, 가능할 때는 협력하며, 불가피하다면 적대적일 것이다.” 토니 블링컨 미 국무장관이 2021년 3월 한 공식석상에서 이런 대중 정책 기조를 밝혔다. 세계 1·2위 대국의 치열한 몸싸움은 한동안 계속될 것임을 예고한 것이다.
책 집필에는 미국 싱크탱크인 독일마셜펀드의 보니 글레이저 아시아 담당 국장 등 미국 국내외 대학 교수와 싱크탱크 전문가들이 대거 참여했다. 각자 서로 다른 시각을 그대로 담다 보니 엇갈리는 부분이 있다. 상당수 아시아·아프리카 국가를 ‘부채 함정’에 빠뜨린 일대일로 프로젝트에 대해 지나치게 우호적이고, 대만 문제에 대한 지정학적 설명이 누락되는 등 아쉬운 점도 보인다. 그럼에도 필자들은 중국을 매일 지켜보는 각 분야의 전문가들이어서 내용이 수준 높고 깊이가 있다.
◇”기후변화 등은 협력해야”
장이머우, 클로이 자오 같은 세계적인 영화감독이 나왔는데도 중국 대중문화가 세계 무대에서 통하지 않는 이유, 공자학원이 미국 대학의 기피 대상이 된 배경 등을 설명하는 대목은 생생하고 현실감이 있다.
미·중이 치열하게 경쟁하지만 기후변화나 보건 위기 문제는 서로 협력해야 한다는 점도 이 책은 지적한다. 세계 경제의 18.5%를 차지하는 대국과 대립만 하면서 지낼 수는 없는 일이라는 것이다. 중국 내에 권위주의 복귀를 반대하는 적잖은 개혁 세력이 존재한다는 점에 기대를 거는 필자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