맡겨진 소녀

클레어 키건 지음 | 다산책방 | 104쪽 | 1만3000원

사랑과 다정함이 낯설어 도망가고 싶을 때가 있다. 그것을 한 번도 겪어보지 못한 이에게는. ‘맡겨진 소녀’(원제 Foster)는 1980년대 초반 아일랜드 시골에 사는 어린 소녀가 먼 친척 부부의 집에서 보낸 어느 여름의 이야기다. 아이가 많은 가난한 집에서 충분한 애정을 받지 못했던 소녀는 엄마가 동생을 출산하기 전까지 친척 부부에게 맡겨진다. 소녀를 ‘아가’라고 부르며 살뜰히 돌보는 아주머니와, 한 번도 손을 잡아주지 않았던 아빠와 달리 소녀의 손을 잡고 바닷가를 걷는 아저씨가 있는 집.

소녀는 이 낯선 애정에 힘든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마음이 가라앉기 시작한다. 집에서의 삶과 이곳에서의 삶의 차이를 가만히 내버려 두기로 한다. 우물에 비친 소녀의 모습은 집시 같던 예전의 모습이 아니다. 깨끗하게 씻고 말끔하게 옷을 입은 자신의 모습 뒤에 아주머니가 지키고 서있다. 소녀는 물맛을 이렇게 표현한다. “물은 정말 시원하고 깨끗하다. 아빠가 떠난 맛, 아빠가 온 적도 없는 맛, 아빠가 가고 아무것도 남지 않은 맛이다.” 소녀는 이곳이 당분간 내 집이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집으로 돌아갈 시간은 오고야 만다.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아일랜드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2010년 10월 출간 이후 아일랜드 교과 과정에 줄곧 실리고 있는 작품이다. 키건은 최근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2022년 부커상 최종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마당을 비추는 달이 저 멀리 우리가 갈 길을 분필처럼 표시해 준다”같이 간결하고 적확한 묘사가 읽는 이를 단숨에 그곳으로 데려간다. 철저히 소녀의 시각으로 디테일하게 짜인 이야기. 소녀를 둘러싼 어른들의 아픔도 읽을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