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일드후드

바버라 내터슨 호로위츠, 캐스린 바워스 지음|김은지 옮김|쌤앤파커스|448쪽|2만2000원

6학년 아이가 친구들과 함께 종잇장처럼 얇게 언 연못을 일부러 밟아본다. 고등학생 아이가 스물두 살인 척 클럽 입장을 시도한다. 10대들이 누군가의 오토바이나 차를 몰래 훔쳐 탄다….

위험한 줄 알면서도 제 발로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드는 청소년기 아이들 모습에 어른들은 아연실색한다. ‘10대는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무모하고 과격한 청소년들의 행동에 대한 두려움이나 혐오감을 뜻하는 ‘에피비포비아(ephebiphobia)’라는 신조어가 나올 정도다. 정도엔 차이가 있겠지만 옛날에도 그랬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청소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모든 실수는 과하고 격렬한 행동에서 비롯된다. 그들은 모든 것에 지나치다. 사랑도 증오도 모두 지나치다.”

‘와일드후드’는 하버드대 인간진화생물학 객원교수이자 의학 박사인 바버라 내터슨 호로위츠와 과학 전문 기자 캐스린 바워스가 ‘인간 청소년’을 이해하기 위해 2010년부터 ‘동물 청소년’을 관찰하고 얻은 결론을 담은 책이다. 저자들은 이 집필을 시작할 때 모두 10대 아이를 키우는 엄마였다. 세계 곳곳을 찾아다니며 청소년 동물을 관찰하고 전문가들을 통해 도달한 결론은 ‘우리 집 애만 그러는 것이 아니구나’였다. “청소년기에 이토록 무모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모든 동물 종 공통이다!”.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국립공원에서 하이에나 한 마리가 무리에서 떨어져 있는 어린 얼룩말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다. 유년기를 갓 지난 ‘청소년 동물’들은 포식자에게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박쥐는 청소년기가 되면 포식자인 올빼미를 일부러 놀리고 조롱한다. 청소년 다람쥐는 대담하게 방울뱀 주변을 잽싸게 돌아다닌다. 아직 다 자라지 않은 여우원숭이는 많고 많은 나뭇가지 중에서도 가장 가는 것을 골라 올라탄다. 청소년기 해달은 백상아리를 향해 헤엄쳐 돌진한다.’ 저자들은 이렇게 유년기를 갓 지난 동물들이 생존 본능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행동을 저지르는 것을 숱하게 목격한다. 양육자의 보호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치고, 동료끼리 싸우거나 피 튀기는 서열 다툼에 끼어드는 등 인간 10대와 비슷한 점들이 발견된다.

저자들은 모든 동물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 유년기와 성년기 사이의 예측 불가능한 시기를 ‘와일드후드(wildhood)’라고 명명한다. 초파리는 단 며칠 만에 끝나지만, 수명이 400년인 그린란드상어는 50년 동안 이 시기를 경험한다. 이어 와일드후드를 겪는 것은 진화생물학적으로 공통 이유가 있다고 주장한다. 부모의 울타리와 규범에서 벗어나 세계를 탐색하며 자립을 위해 필수 기술을 익히는 기간이라는 것이다. 포식자를 피해 안전히 살아남고 서열에 적응하며 생계를 꾸리고 구애하는 언어를 해석하는 법 등을 이때 배운다.

문제는 ‘와일드후드’에 목숨을 앗아갈 만큼의 비정함도 따른다는 것이다. 무리에서 벗어나 포식자 근처에서 얼쩡거리는 청소년 동물이 가장 쉬운 먹잇감이 되듯, 인간 청소년도 어른에 비해 다치거나 목숨을 잃을 확률이 훨씬 높은데 이것이 ‘와일드후드’의 영향이라고 책은 제시한다. 미국에선 35세 성인에 비해 청소년이 살인 사건 피해자가 될 확률이 5배 높고, 5세 미만 유아를 제외하면 물에 빠져 사망하는 비율도 15~24세 연령대가 가장 높다. 감전 사망률 역시 전기 관련 분야에서 일하는 성인과 콘센트에 손가락을 집어넣는 유아를 제외하고 청소년이 가장 높다.

그럼에도 와일드후드를 겪지 않으면 더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 저자들은 “경험을 쌓으려면 먼저 경험해야 하며, 자신을 지키려면 먼저 위험을 무릅써야 한다”는 역설에 대해 이야기한다. 연어 실험 사례가 이를 보여준다. 연어를 여러 집단으로 나눠 한 집단은 포식자인 대구를 만나게 했고, 또 다른 집단은 포식자와 전혀 접촉이 없도록 했다. 첫째 집단은 연어 몇 마리가 잡아먹혔지만 나머지 살아남은 연어는 무리를 이루며 수비 태세를 갖추는 법을 학습했다. 반면 다른 집단은 수조를 나가 포식자를 만나자 지나치게 당황했고 아예 반응을 보이지 않고 굳어버리기까지 했다. 이들은 손쉽게 대구의 먹잇감이 됐다.

이 책은 청소년기를 이해하는 데 새로운 통찰력을 준다는 평가도 받지만, 인간 청소년이 처한 복잡 다단한 인간 사회를 동물 세계로 치환하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라는 평가도 있다. 다만 자녀를 보호하고자 위험 요인에서 ‘고립’시켜 놓는 것이 더 큰 위험일 수 있다는 점은 확실하다. 저자들은 “모든 동물이 언젠가는 위험으로 가득한 세상을 홀로 극복해야 한다. 분명한 점은 보호막이 되어주는 부모 곁에서는 아무것도 경험하지 못하고 교훈을 쌓을 수도 없는 위험이 있다는 것”이라고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