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일은 당신을 사랑하지 않는다

세라 자페 지음 | 이재득 옮김 | 현암사 | 520쪽 | 2만2000원

“다시 좋은 선생님이 될 수 없을 것 같다.”

이달 초 생을 마감한 대전의 한 초등교사는 “누구의 도움도 받지 못했다”며 생전 교사노조에 이런 글을 써 보냈다. 학부모가 그를 아동 학대 혐의로 신고했고, 무혐의가 나온 뒤로도 악성 민원을 제기했다는 내용. 그가 지칭한 ‘좋은 선생님’이란 학생을 사랑으로 돌보는 교사일 것이다. 많은 이들이 사랑이란 이름으로 교사에게 헌신을 기대한다. 미국의 언론인인 저자는 “교사들은 아마도 최고의 사랑 노동자들인 듯하다”며 “교사들은 오랫동안 자신들이 하는 일을 직업 이상으로 대하라는 기대를 받았다”고 세태를 지적한다.

미국 교육 현실도 한국과 크게 다르지 않다. 미국의 한 고등교사는 저자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심리치료사와 정신건강 사회복지사가 더 많이 필요합니다. 저희 능력 밖의 일을 담당해줄 사람들이 필요해요.” 트럼프 정부 당시 이민자 단속이 강화되며 학생들의 정신적 스트레스가 커졌는데, 상담 인력은 크게 충원되지 않았다는 것. 교육 예산이 삭감되며 인력이 줄어들고, 코로나 기간 수업이 온라인으로 전환됐을 때도 교사들은 돌봄의 최전선에서 감정 노동을 강요받았다. 저자는 “교사들이 지역 사회의 굶주림, 의료 부족 등으로 야기된 문제들을 해결하도록 떠넘겨 받았다는 점이 (문제의) 본질”이라고 한다. 그 문제들을 떠넘긴 핑계는 교사란 직업에 기대되는 ‘사명감’과 ‘사랑’이다.

저자인 세라 자페는 “일이 꼭 즐거워야 하냐는 질문은 예전부터 있었지만, 특히 코로나가 덮쳤을 때 노동의 혹독함이 수면 위로 떠올랐다”며 “‘사랑하는 일’이란 마법을 깨기 위해서는 직장의 계약 관계를 초월하는 (동료와의) 유대감이 필요하다”고 책에 썼다. /게티이미지뱅크

일을 사랑하라. 단순히 먹고사는 문제를 넘어서게 된 이후, 현대인들이 자주 듣는 말이다. 그러나 일을 사랑하고 일터에서 자아를 실현하고자 노력하더라도 현실은 다를 때가 많다. 오히려 ‘사랑’ ‘행복’ 같은 말들은 누군가가 일에 대한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지 못하도록 막는 부담으로 작용하기도 한다. 저자는 “일에서 행복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스스로를 위해 다져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욕구를 만들어준 세상이 발밑에서 무너져 내리고 있다”고 현재를 진단한다. 돌봄 노동, 판매직, 인턴, 시간 강사 등 직군을 인터뷰하고, 관련 연구를 통해 이들 직업에서 ‘사랑’을 가장한 헌신이 요구돼 온 과정을 좇는다.

책은 한 권의 단편소설집처럼 술술 읽힌다. 구체적인 해결책을 제시하기보다는 ‘일과 사랑’이란 주제로 여러 사연의 주인공을 등장시킨다. 저자가 “책에 등장한 노동자와 직업군 외에도 20~30명 이상의 사례가 더 있었다”고 밝혔듯 ‘사랑의 노동(labor of love)’이란 신화는 곳곳에 있다. 현대인들은 그 어느 시대보다 더 많이 일하고 있으며, 기술 발전 덕분에 퇴근 이후 집에서도 대기 상태에 놓여 있다. 계속되는 저성장도 주요 원인이다. 일하는 시간은 늘어난 반면 급여는 그만큼 오르지 않았다. “대학 졸업장이 더 이상 중산층 직업을 보장해주지 못하는” 현실에서 그나마 괜찮은 직장을 택하려면 ‘사랑의 노동’을 알면서도 받아들여야만 한다.

여러 사례 중에서도 예술가와 운동선수에 대한 분석이 흥미롭다. 예술과 스포츠는 ‘즐겨야 한다’는 인식이 강하지만 그 이면을 보라고 한다. 예술가는 뛰어난 작품을 만들고 운동선수는 승패에서 이기도록 요구받지만 모두가 이를 성취할 수는 없는 법. 저자는 ‘즐기면 된다’는 인식이 예술가와 운동 선수의 노력을 경시하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일을 일로 인정하지 않고서는 더 친절한 세상을 만들어갈 수 없다”며 이들이 일을 할 수 있도록 최소한의 생계 지원을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책은 ‘사랑과 일을 분리해서 각각의 가치를 다시 생각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른다. 사랑을 핑계로 일에 지나친 헌신을 강요하기보다는, “더 나은 근무 요건을 요구하는 게 당연하다”는 것. 그리고 사랑은 일과 일터가 아니라 인간 사이에서만 찾을 수 있기 때문에, 사랑하는 동료와 함께 고민하며 자신이 하는 일의 가치를 높이라는 뜻이다. 500쪽이 넘는 책의 결론으로 다소 모호한 측면이 있으나 책의 스토리텔링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서 있는 현실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로서 손색이 없다. 저자는 독자가 각자 직업에 주어진 사명감에서 벗어나 삶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을 떠올리기를 바라며 이렇게 묻는다. “일할 필요가 없다면 그 시간에 당신은 무엇을 할 것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