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톤 허

“저는 문학 번역 언제든 그만둘 준비가 돼 있어요.”

‘하지 말라고는 안 했잖아요?’(어크로스)를 낸 안톤 허(42·본명 허정범)가 말했다. 그는 정보라 소설 ‘저주토끼’, 박상영 소설 ‘대도시의 사랑법’을 영어로 번역해 작년 부커상 인터내셔널 부문 후보에 동시에 올린 번역가. 첫 책을 쓴 이유는 ‘답답함’ 때문이다. “K문학은 사실 ‘맨 땅에 헤딩’이다. 책을 발굴하고, 자비 들여 샘플 만들고, 해외 출판사에 어필하는 긴 세일즈 과정을 거쳐야 한다. 번역 기관의 지원은 갈수록 줄고 있다.”

번역가의 현실과 작가 개인의 삶을 책에 담았다. 주재원인 아버지를 따라 유년 시절 해외를 오갔다. 문학 소년이었지만 부모의 반대를 이기지 못하고 국내 대학 법학과에 진학했다. 뒤늦게 꿈을 좇아 영문과 석사과정을 밟았다. 대학원 입학시험 답안을 영어로 작성한 것을 시험 감독이 문제 삼자, 안톤 허는 “영어로 쓰면 안 된다는 지시가 없잖아요?”라고 답했다. 이처럼 ‘없는 영역’을 개척하며 성장한 과정에 대해 작가는 “대단한 신념은 없었다”고 했다. “나도 부모님의 반대를 이겨내지 못해서, 오랜 시간 삽질을 했다. 프리랜서로 비문학 번역을 했고, 생계를 위해 프로그래머로도 일했다. 책에서 성공에 가려진 내 민낯을 볼 수 있을 거다.”

그는 내년 영미권 거대 출판사 중 하나인 하퍼콜린스에서 첫 소설 출간을 앞두고 있다. “번역가를 작가가 아닌 독자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독서가 영원히 기록되기 때문이다. 저는 어떤 일을 하더라도 문학 독자로 남아있을 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