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시지 않을 수 없는 밤이니까요

정지아 지음|마이디어북스|320쪽|1만7000원

대학입학시험은 봤지만, 아직 발표는 나지 않은, 성인의 문턱 앞에 선 시간. 크리스마스이브에 친구들을 데려온 딸에게 아버지는 ‘쩌번에 담가 논 매실주’를 단지째 내놓으며 말한다. “광에 술독 있응게 맘대로 갖다 묵어라이.”

소설 ‘아버지의 해방일지’로 베스트셀러 작가 반열에 오른 저자가 술과 사람에 대해 쓴 에세이 34편을 묶은 책. 스스로를 ‘인복과 술복 하나는 끝내준다’고 소개하는 저자는 “술이 맛있느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한다. “술은 스트레스를 지우고 신분을 지우고 저 자신의 한계도 지워 (…) 우리를 날아오르게 한다. 깨고 나면 또다시 비루한 현실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지만 그러면 또 어떠한가. 잠시라도 해방되었는데!”

술을 매개체로 삼았을 뿐, 실은 “천천히 오래오래 가만히 마시면 누구나 느끼게 된다. 살아있는 모든 것에 대한 연민을”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따뜻한 시선과 통찰력을 엿볼 수 있는 책이다. 오늘도 술 한잔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술 대신 이 책을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