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은 부드러워, 마셔

한은형 지음|을유문화사|320쪽|1만7000원

우리는 왜 술을 마실까. 미국 소설가 스콧 피츠제럴드는 “맨정신일 때 내가 쓴 이야기는 멍청하기 짝이 없다”는 답을 남겼다. 한국 소설가인 저자는 군침 도는 일상 속 주담(酒談) 48가지를 그에 대한 답으로 펼쳐 놓는다. 홍어무침에 스며든 미나리 향을 쫓다 찾게 되는 알싸한 소주 한 잔, ‘땀과 갈증과 스트레스’란 3대 요건이 갖춰져야 비로소 알게 되는 시원한 맥주의 참맛, 옥수수 껍질을 벗기다 간절히 생각나는 옥수수 증류주 버번위스키 등이다.

주담 속 만담들이 상상 속 술잔을 저자와 함께 기울이고 싶게 만드는 건배사처럼 활약한다. 지인과 맛없는 와인을 마신 뒤 “(와인에 물을 타 마시는 고대) 그리스식이었어. 나는 (원액대로 먹는) 바르바로이식이 좋은데”라며 깔깔거리는 장면이나 위스키 근본주의자들에 대한 물음을 읽다 보면 무릎을 탁 치게 된다. “평양냉면에 식초나 겨자 타는 걸 죄악시하는 분들과 위스키에 다른 걸 타는 걸 반대하는 분들이 만나면 말이 잘 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