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소되는 세계

앨런 말라흐 지음|김현정 옮김|사이|456쪽|2만3000원

“국가의 밤이 깊었네. 싱가포르의 출생률을 끌어올려 보세!”

2012년 싱가포르 정부가 주도했던 ‘국가의 밤’ 홍보 노래의 일부다. 국가의 밤이란 성인들에게 “잉태를 위한 관계를 맺을 것을 촉구”하는 출산 장려 캠페인. 인구 폭발을 걱정했던 시대를 지나 인구 부족이 여러 나라의 고민거리로 떠오른 현실을 보여준다. 아직은 전 세계 인구가 늘고 있지만 과연 언제까지 그럴까. 미국 브루킹스연구소 출신의 도시 계획 전문가인 저자는 현재의 인류 상당수가 생존해 있는 동안 인구 감소가 시작될 것으로 본다. 인구가 줄면 경제도 도시도 줄어든다. 성장과 확대를 당연시했던 세계관의 대전환이 필요하다는 의미다.

◇50년 안에 전 세계 인구 줄어든다

세계 인구가 감소세로 돌아서는 시점을 2070년으로 내다봤다. 미국 인구는 이민이 없을 경우 10년 뒤인 2034년부터 줄어들고, 2050년에는 65국의 인구가 감소한다. 인구가 줄면 수요와 투자가 위축된다. 이미 전년 대비 상승 폭이 갈수록 떨어지고 있는 전 세계 GDP 성장률도 2050년부터는 마이너스를 기록할 전망이다. 지금은 예외적인 존재로 간주되는 축소 도시(단기간에 인구의 상당수가 줄어드는 도시)가 그때쯤 표준이 된다.

우리가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어서 느끼기 어려울 뿐 변화는 오래전에 시작됐다. 1960년 4.98명이었던 전 세계 합계출산율(여성 한 명이 평생 낳을 것으로 예상되는 출생아 수)은 1980년 3.71명, 2018년에는 2.41명으로 낮아졌다. 인구 규모가 유지되는 대체출산율(2.1명)을 겨우 웃도는 수준이다. “인구 폭탄 이야기가 세계인의 의식에 스며들던 시기에 미래의 인구 감소로 이어질 추세가 이미 나타나기 시작했다.” 인구 감소를 도시화와 경제 번영의 자연스러운 결과로 본다. 농경 사회와 달리 도시에서 자녀는 자원이나 노동력이 아니다. 여성의 교육 기회 증대, 안전한 피임 수단의 보급처럼 도시화가 수반하는 현상들도 출생률을 낮춘다.

인적 없는 도시의 풍경은 낯설다. 그러나 인구 감소는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며 축소된 도시가 반드시 디스토피아도 아니다. 자립의 기반을 갖춘 도시는 인구가 줄어드는 세계에서도 생존할 수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따라서 낮아지는 출생률을 정책으로 끌어올리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고 지적한다. “소위 출산 장려 정책이 그런 (감소) 추세를 약간 늦추는 것 이상의 역할을 할 가능성은 극도로 낮다.” 싱가포르는 ‘국가의 밤’ 외에도 아동 수당, 육아 보조금, 세금 환급, 주택 우선 배정 같은 정책을 도입했지만 2020년 합계출산율 1.1명으로 세계 최저 수준이었다. 중국의 ‘한 자녀 정책’도 마찬가지다. 그 10년 전부터 이미 출생률은 급감하고 있었고 시행 이후 출생률이 하락한 속도도 한국·대만보다 느렸다는 것이다. 인구 감소는 지구적 차원에서 장기적으로 접근해야 한다는 지적은 하루가 멀다 하고 ‘저출생 대책’을 쏟아내는 데 급급한 대한민국에도 유효할 것이다.

◇인구 감소는 ‘실패’가 아니다

축소되는 세계에서 살아가기 위해 우선 필요한 것은 관점의 전환이다. 인구 감소를 실패가 아닌 가능한 미래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이런 전제하에서 ‘지역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지역·도시가 세계 경제에 대한 과도한 의존에서 벗어나 자체 자원을 투자해 재화·서비스·음식·에너지의 상당 부분을 생산하는 과정”이다. 목가적인 자급자족과는 다르다. 글로벌 경제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도시는 그 기반이 흔들리면 급격히 쇠락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때 8만명에 달했던 제너럴모터스(GM) 공장 근로자가 8000명 이하로 줄면서 활력을 잃은 미시간주 플린트가 그런 경우다.

기술의 발달로 지역화의 실현 가능성이 높아졌다. 우선 발전(發電). 지열·풍력 등으로 에너지원이 다양화되고 전기를 전달·저장하는 기술도 고도화됐다. 과거처럼 대규모 발전소에 기대지 않고 지역이 에너지 자립에 이르는 길이 열렸다. 두 번째는 제조업의 분산이다. 막대한 설비나 최첨단 기술이 필요한 제품은 여전히 글로벌 대기업의 몫이겠지만, 가구·음식·직물 같은 소비재는 소규모 생산도 가능하다. 소규모 생산은 지역의 수요에 맞춤형으로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마지막은 원격 근무로 물리적인 거리를 극복하는 것이다. 지역화는 고립이 아니다. 지역화에 성공한 도시는 여전히 세계 경제의 일부이며 다른 도시와도 연결돼 있다. 저자는 이를 “네트워크화된 지역주의”라 부르며 “얼마든지 실현 가능하지만 절대로 쉬운 길은 아니다”라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