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것들
앤드루 포터 소설 | 민은영 옮김 | 문학동네 | 332쪽 | 1만8000원
삶이란 도화지가 검게 물들어가는 동안, 우리는 백지상태였던 과거를 그리워한다. 무한한 가능성이 있던 그때와 지금을 비교하며 회한을 느낀다. 단편 ‘라인벡’은 청춘을 함께 보낸 세 친구 이야기. ‘나’는 마흔셋이 되도록 “뭔가 확고한 것”을 찾지 못했다. 제대로 된 연애를 못 했고 직업도 불확실하다. 대학 친구 ‘데이비드’와 ‘리베카’를 따라 미국 뉴욕주의 작은 도시 라인벡에 왔다. 부부인 둘 사이에서 방파제 역할을 해 왔건만, 또 선택할 시간이다. 부부는 둘의 관계 회복을 위해 이사를 가기로 했다. ‘나’에게 따라오라고 권유한다.
청춘을 추억하는 이 단편이 중년의 청승으로 읽히지 않는 이유는 고민의 보편성에 있다. ‘나’는 “삶의 어느 시점에서 잘못된 기차에 올라타 정신을 차려보니 젊을 때는 예상하지도 원하지도 심지어 알지도 못했던 곳에 와버렸다”고 깨닫지만, 회한의 진창에 빠지진 않는다. 친구들과 와인을 마시던, 희미한 순간을 붙잡고 생각한다. “그런 사소한 기억들이 얼마나 많이 지워져버렸을지.” ‘나’의 새 선택은 보여주지 않는다. 다만 빛바랜 우정이 그를 살게 하리란 여운이 남는다.
앤드루 포터가 플래너리 오코너상 등을 받은 데뷔작 ‘빛과 물질에 관한 이론’ 이후 15년 만에 낸 소설집. 그간 장편소설을 낸 적은 있지만 소설집은 ‘빛과 물질에…' 이후 처음이다. 책에 실린 15편은 대체로 40대 남성 화자인 ‘나’의 사라진 것들에 대한 회고다. “자네가 사랑하는 일은 뭐야?”라고 묻거나 “소중한 나의 친구”를 부르며 독자 개인의 경험을 일깨운다. 이야기의 구조가 단조롭다는 느낌이 있지만, 어디를 펼쳐도 과거가 살아숨쉬는 것은 작가의 유려한 문체 덕분일 테다. 수많은 ‘나’가 잊고 지냈거나 외면했을 무언가를 읽다 보면, 알게 될지도 모른다. 삶은 돌이킬 수 없기에 아름답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