힐튼이 말하다

김종성 외 지음|램프북스|320쪽|2만5000원

서울 도심에 대기업의 고급 호텔이 본격적으로 들어선 때는 1970년대였다. 정부는 관광 산업으로 외화를 벌기 위해 남산 영빈관(현 신라호텔)과 워커힐(그랜드워커힐)을 각각 삼성과 선경(현 SK)에 넘기고 도심을 재개발해 플라자호텔과 롯데호텔을 조성했다. 1973년엔 공사 중 화재로 골조만 남은 채 방치됐던 서울역 앞 교통센터 빌딩을 대우가 인수하게 했다. 서울의 관문에 사옥을 짓는 대신 뒤쪽 경사지에 호텔을 만들라는 단서를 달았다. 재개발을 앞둔 서울 힐튼(이하 힐튼)의 탄생 배경이다.

대우그룹이 무너지고 힐튼은 싱가포르계 투자회사에 소유권이 넘어갔다가 2021년 국내 부동산 투자사 이지스자산운용에 매각됐다. 이 책은 1983년 개업해 2022년 영업을 종료하기까지 힐튼의 시간을 담은 기록집이다. 건축 설계자인 김종성을 비롯한 건축가들의 글과 사진, 도면, 힐튼 사람들의 인터뷰를 담았다. 사라진 뒤에도 기억하기 위해서.

◇한국 건축의 수준 보여준 ‘작품’

김종성의 경기고 후배인 김우중 회장은 “몇 번 선배님이라고 하다가 형님으로 바꿔 부르면서” 설계를 맡겼다고 한다. 디자인의 핵심 중 하나가 경사지의 18미터 높이 차를 이용한 로비와 아트리움(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트인 공간)이다. 투숙객뿐 아니라 모든 방문객에게 개방된 이곳에 “지금도 구하기 어려운 재료들”인 트래버틴(로마 건축물에 쓰이는 베이지색 대리석)과 녹색 대리석, 참나무(오크), 청동을 사용해서 “모든 사람이 우아하고 세련된 공간에서 환대받는 느낌”이 들도록 했다. 객실동 외장에 쓰인 커튼 월(금속 뼈대에 유리를 붙이는 기법)이 또 다른 포인트다. 당시 국내엔 제작하는 곳이 없었다. 스승 미스 반 데어로에의 뉴욕 시그램 빌딩 커튼 월을 만든 회사에서 샘플을 제작하고 효성알루미늄에서 생산했다. 이처럼 공들인 결과 힐튼은 설계와 시공 양면에서 한국 건축의 높은 수준을 세계에 보여준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저녁 어스름 속에서도 불 꺼진 힐튼(오른쪽 아래)의 어둠은 도드라져 보인다. 입구에 불이 켜진 것은 호텔 영업 종료 뒤에도 문을 닫지 않은 양복점 때문이다. /사진가 이강석

김종성은 커튼 월과 로비·아트리움을 보존하고 부지 내에 더 높은 건물을 지어서 개발사의 재산권도 지키자는 대안을 제시해 왔다. 지난해 11월 서울시 도시계획위원회 분과소위를 통과한 수정안은 로비의 계단·기둥 등 형태 및 재료를 보존하고 객실동은 철거하도록 했다. 이에 대한 김종성의 의견도 책에 실려 있다. “박제된 옛 로비의 일부를 남기게 한다는 결정문은 교묘한 자구의 선택으로 보였다. 저층 로비에서 4.8미터 위에 있는 현재 1층, 그 위 7.2미터에 있는 2층, 그 위 6미터의 지붕이 어떤 새로운 모습으로든지 재구성돼야 ‘보존’이란 개념이 산다는 것을 여기에 후기로 남긴다.”

무엇을 해야 하고, 할 수 있을까. 건축가 오호근은 건축물의 물리적 원형을 3차원 데이터로 스캔해 가상 시공간에서 재현하는 ‘디지털 트윈’의 기술적 가능성을 소개했다. 홍재승은 문화재나 근대 건축물뿐 아니라 현대 건축물까지 적극적으로 보호할 수 있는 제도의 필요성을 제안했다. 힐튼의 운명과는 별개로 논의가 필요한 주제들이다. 자본과 문화가 충돌하는 가운데 제2, 제3 힐튼이 앞으로 계속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다.

◇기록으로 남은 힐튼의 추억

한 장소를 완성하는 것은 건물이 아니라 기억이다. 힐튼의 식음료 부문을 총괄했던 홍석일 상무는 인터뷰에서 “1980년대 후반까지도 양식이라면 대부분 돈가스나 오므라이스 같은 메뉴였고 호텔에도 프랑스 식당이 많았다”며 국내 호텔 최초 이탈리안 레스토랑인 ‘일 폰테’ 개점 당시를 회상했다. 1976년부터 이태원에서 양복을 지어온 힐튼양복점 이덕노 대표는 “힐튼에서 마지막 10년을 마무리하겠다고 고객들과 한 약속” 때문에 호텔이 영업을 끝낸 뒤에도 가게 문을 닫지 않았다.

힐튼은 IMF 총회(1985), 남북 고위급 회담(1990), 노태우 전 대통령과 고르바초프 소련 대통령의 만찬(1994)이 열린 현대사의 현장이었다. 수록된 사진 속 로비에서 담소하고 아트리움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방문객들에게도 힐튼은 저마다의 추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마지막 장에 실린 도면들은 손으로 그렸을 이들의 노고를 짐작하게 한다.

극적 반전이 없는 한 건축계에서 요구하는 보존은 어려워 보인다. 기록조차도 없이 사라져간 수많은 건축물에 비해 힐튼은 운이 좋은 편이지만, 그것으로라도 위안을 삼아야 하는 우리 현실은 씁쓸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