뜨거운 유월의 바다와 중독자들
이장욱 소설 | 현대문학 | 184쪽 | 1만4000원
뜨거운 바람이 얼굴에 부딪히는데 바다에서 눈을 떼지 못했던 적이 있는가. 잔잔한 물결이 다른 물결과 만나 부서지진 않을까 상상하며. 이장욱의 소설은 그런 순간의 먹먹함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인물들은 인생의 폭풍을 막 흘려보낸 직후다. ‘연’은 남편 ‘모수’가 죽은 다음 그의 해변여관을 이어서 운영한다. 인적이 드문 해변에 위치해 곧 있으며 철거될 곳이다. 연극배우 ‘천’은 동거인 ‘한나’가 자신을 떠나 옛 애인에게 간 뒤로 이곳을 찾았다.
매일 밤 6월의 바닷바람이 여관 창문을 두드린다. 잔잔할 것 같지만, 잠을 잘 수 없을 정도로 끈질긴 바람이다. 인물들의 사연도 마찬가지. 이미 과거가 됐으니 덤덤하게 이야기하지만, 당시엔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앵커였던 ‘한나’는 재난 뉴스 속보를 전달하던 도중, 웃음이 터져 나와 논란에 휘말렸고 결국 일을 그만뒀다. 세상은 재난을 막지 못한 정부 관료에게만 관대했다. ‘모수’의 죽음은 그가 성실하고 평범했다는 이유로 평가절하된다. “안된 사람이 너무 많아져서 안됐다는 것도 의미 없는 말”이 되어버린 세상이다.
1994년 등단해, 시와 소설을 넘나들며 활동한 작가의 이력만큼 여러 인물의 삶이 맞물리며 빚어내는 풍경이 아름답다. 현대문학의 핀 시리즈 50번째 소설. 소설은 타인에 대한 폭력과 무관심이 커지고 자기 정체성을 잃어버린 세상을 배경으로 삼지만, 이를 극복하는 방법에 대해 말하지 않는다. 대신 뜨거운 바람을 맞으며 잠시 기다리자고 말하는 듯하다. 세상이 망망대해 같을지라도, 삶은 또 흘러갈 테니 말이다. 등장인물들이 자신도 모르게 내뱉는 문장이 인상적이다. “다음 구름에서 쉬어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