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요약 금지
콜린 마샬 지음|어크로스|264쪽|1만7000원
‘한국 요약 금지’라는 제목은 한국이라는 나라를 ‘K팝 종주국’ ‘성형수술 공화국’ 같은 한두 마디로 정의하기 어렵다는 의미다. 어느 나라든 마찬가지지만 한국은 어느 나라보다도 역동적이라는 점에서 특히 그렇다.
저자는 한국에 10년째 살고 있는 미국인 칼럼니스트. 한국에 대해 한글로 썼던 글과 뉴요커·가디언 같은 매체에 영어로 썼다가 한국어로 개고(改稿)한 글을 엮었다. 한국이라는 텍스트를 읽는 그의 시도는 요약보다 번역에 가깝다. 번역은 제2의 창작이다. 한국 사회의 이면을 적극적으로 해석하며 한국인도 몰랐던 한국인의 자화상을 드러낸다. “칼럼니스트로서 내가 하고 있고, 또 하고 싶은 일은 한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는 새로운 관점을 찾아내는 것이다.”
◇한국인도 몰랐던 한국의 자화상
한국의 콤플렉스를 돌아보게 하는 내용이 많은데도 공격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바탕에는 한국에 대한 애정이 깔려 있다. 한국산 히트 상품인 ‘강남스타일’ ‘기생충’ ‘오징어 게임’의 공통점을 “한국 사회의 피상적 측면과 불공정, 폭력성을 민감하게 풍자”했다는 데서 찾는다. “20세기에는 섬유, 자동차, 반도체가 한국을 풍요롭게 했지만 21세기에는 풍요에 대해 표출된 불만이 수출 효자 상품이 됐다.” 성공적인 한국 홍보 영상으로 소개한 ‘seoul_wave’는 먹자골목과 성형수술 상담, 만원 지하철을 그대로 비춘다. 미국인이 만든 이 영상이 “외국인들의 극찬”을 받은 것은 특별히 아름다워서가 아니라 진짜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 정부가 만드는 영상은 연예인을 앞세워 좋은 것만 보여주려 하기 때문에 공감을 얻지 못한다. 한국인들은 ‘마이너 언어’인 한글 이름이 서양인에게 어렵다는 생각에 영어 이름을 사용하지만 정작 외국인들은 “실제 이름을 알려줄 만큼 상대를 존중하지 않는다는 신호”로 받아들일 우려가 있다.
책에 실린 글 사이에는 편차가 있다. 예컨대 ‘떡튀순’과 치안, 대중교통을 포함해 “서울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 이유” 43가지를 꼽은 글은 외국인들이 유튜브에서 자주 이야기하는 한국 칭찬처럼 읽힌다. 반면 자기 계발의 열망이 서양보다 한국에서 보편적인 이유를 ‘아이러니’에서 찾는 대목은 신선한 관점을 제시한다. 서양식 사고 방식인 아이러니(반어)는 냉소와 회의를 수반한다. 한국에서는 아이러니가 그만큼 널리 통용되지 않기 때문에 미래를 위한 노력이 종종 비웃음을 사는 서양보다 열망의 추구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다.
이런 편차는 한국에 대한 저자의 관점과 이해도가 10년에 걸쳐 변해왔다는 데서 비롯한다. 스스로 “이중인격과 비슷한 상태”라고 표현한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다. “한국어로 쓴 글과 과거 영어로 써 뒀던 글은 사용하는 단어에서 사고방식까지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르다.” 강릉 출신 여성과 결혼해 한국에 사는 외국인으로서 저자는 내부자와 관찰자의 시선을 넘나든다. 그 시선이 한국 사회의 가장 깊숙한 곳을 향하면서도 객관적 거리를 유지한다는 점에서 평범한 한국 체험기와 차별화된다.
◇'K’의 진짜 의미 고민해야
“일본에 거주하는 서양인의 내러티브는 꽤 정형화된 형태를 띠고 있다. 반면 어느 누구도 아직 한국에 정착한 서양인의 서사를 구체적으로 정형화하지는 못했다.” 이 책은 보다 깊이 있는 서사를 구축하는 시도에 해당한다. 여러 매체에서 목소리를 내는 외국인이 많아졌지만 “좋은 점과 싫은 점을 길게 나열하면서 한국 사회 전체를 설명하고 평가하는” 이야기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그 서사는 결국 한국 사회의 실체에 대한 것이다. “한국 문화의 어둠과 빛(그리고 그 둘의 필연적이고 복잡한 혼합)은 모두 인정받을 만한 것이며 앞으로도 충분히 주목해야 할 주제들” “한국의 좋은 점은 정확히 보지 못하고 부정적인 면에만 집착하는 한국인들의 인식”과 같은 대목은 한국의 실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일이 한국인에게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암시한다. ‘K’로 대표되는 한국 문화에 대한 관심이 어느 때보다도 뜨거운 지금이 K의 진정한 의미를 깊이 고민할 적기(適期)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