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프랭크 허버트 단편 걸작선

프랭크 허버트 소설 | 박미영·유혜인 옮김 | 황금가지 | 전2권 | 각 권 2만 2000원·세트 3만5000원

현재의 상상은 미래의 과학적 발견에 의해 낡기 마련이다. 그러나 ‘듄’ 소설가 프랭크 허버트(1920~1986) 단편집은 이 당연한 명제가 틀릴 수도 있음을 보여준다. 6권이란 ‘듄’의 분량이 방대하다고 느껴진다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그의 단편집을 펼쳐봐도 좋을 테다.

시간 순서대로 엄선한 단편 32개는 우주여행·초능력과 같은 상상이 실현된 시대를 배경으로 삼되, 지금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한 방’을 갖고 있다. ‘뭔가 찾고 계신가요?’(1952)는 허버트가 처음 발표한 단편. 최면술사와 한 여성이 존재에 의문을 품는 이야기가 주를 이루고, 외계 행성의 존재들을 세뇌하는 우주 생명체 데네브인의 일과가 교차된다. 두 지구인은 “우리의 모든 삶이, 세계가 최면 속 환상이라면”이란 의문을 품지만, 마침표를 찍지는 못한다. 이들이 변화를 알아채지 못하도록 데네브인이 일하고 있기 때문이다.

단편 ‘GM 효과’(1965)는 조상의 기억을 경험하게 해주는 약물이 소재다. 기억을 되짚는 일은 역사의 민낯을 들추는 것과 같다. 미국 대통령 링컨의 후손은 약물을 통해 링컨이 철저한 인종차별주의자였음을 알게 된다. 이 약물의 폐기를 놓고 오가는 대화가 지금의 우리를 꼬집는 말처럼 들린다. ‘가장 잔인한 사람이 생존해 아이를 낳았지만, 우리는 현재의 의식에서 그 사실을 숨겼다’. 타인을 짓밟는 일에 점차 무감각해지는 우리의 모습을 예견한 것만 같다.

훗날 ‘듄’의 기원이 된 단편들과 ‘듄’ 시리즈의 유일한 단편 ‘듄으로 가는 길’이 수록돼 눈길을 끈다. ‘듄’을 모르더라도 SF 거장이 만든 촘촘한 상상 세계가 책장을 쉽게 덮지 못하도록 막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