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포주공아파트

박철수 지음|마티|350쪽|2만5000원

1971년 대선에 출마한 박정희 대통령의 선거 광고가 첫머리에 나온다. 광고는 흐뭇한 농부의 미소로 “풍요한 결실”을, 단란한 가족의 모습으로 “행복한 생활”을 강조했다. 풀밭에 앉은 가족의 뒤로 살짝 보이는 건물은 마포주공아파트(이하 마포아파트)다. 그곳은 ‘성냥갑’이 아니라 현대적이고 새로운 삶의 무대였다.

이 책은 박정희 정부의 기획으로 탄생한 마포아파트의 유산을 살핀다. 재건축으로 사라진 마포아파트가 여전히 중요한 이유는 ‘아파트 공화국’ 한국의 출발점이었기 때문이다. 지난해 별세한 한국 근현대 주거 건축 연구자 고(故) 박철수 서울시립대 교수가 병중에 집필한 유작이다.

◇현대화된 삶의 무대

1961년 5·16 직후 추진된 마포아파트는 정권의 능력을 드러내 이전 정부와 차별화하기 위한 ‘시범 아파트’였다. 그전에도 아파트는 있었지만 대개 동 하나에 2~3층짜리였다. 마포주공은 10층짜리 주거동 11개에 1158가구가 단지를 이루는 압도적 규모를 목표로 내세웠다. 보일러로 공급되는 온수, 수세식 화장실, 엘리베이터 같은 설비들도 당시로선 혁신이었다. 엘리베이터는 결과적으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나중에 설치할 자리를 남겨뒀을 만큼 강력한 상징이었다. 사업을 맡은 대한주택영단(주택공사의 전신)은 그런 건물을 지어본 경험이 없었지만 “밤낮 매진해 3개월 만에 설계를 마무리하는 전형적인 극복의 서사를 썼다.”

마포아파트 9동 앞 놀이터에서 시소를 타는 어린이들. 마포아파트는 놀이터를 비롯한 공공 시설을 단지 안에 조성하는 한국식 아파트 단지의 출발점이었다. /마티

부지는 안양으로 이전한 마포 형무소의 채소밭 자리였다. 땅 일부를 확보하지 못한 상태에서 착공부터 했을 정도로 시급한 국가적 프로젝트였다. 주한미국경제협조처(USOM)에 원조를 요청했지만 미국은 그런 아파트가 한국 실정에 맞지 않는다며 거절했다. 나중엔 영단의 계획안이 모든 면에서 미흡하다고 조목조목 지적하는 의견서를 보내왔다. 결국 마포아파트는 6층으로 설계를 변경했다. Y자형 주거동 6개를 1962년 1차로 완공하고 일자형 주거동 4개를 1964년 추가 완공했다.

◇'아파트 공화국’의 출발점

마포아파트는 한국식 아파트의 원형이다. 한국의 아파트가 지금도 마포아파트 모델을 따른다는 점에서 저자는 “우리는 여전히 마포아파트 체제 속에 있다”고 말한다. 우선 마포아파트는 한국 최초의 단지식 아파트였다. 주거동을 반복 배치하고 지하엔 상점·편의시설을 배치해 “독자 생활이 가능한 도시의 섬”을 꿈꿨다. 단지식 아파트는 동부이촌동 한강아파트 지구, 반포주공을 거쳐 초·중학교까지 갖춘 잠실주공에서 완성된다. 문제는 이런 아파트는 외부와 단절된 ‘빗장 공동체(gated community)’가 되기 쉽다는 점이다. 성(城)처럼 폐쇄적인 아파트는 도시를 분절시키는 요인으로 건축계에서 자주 지적되는 문제다.

분양을 통한 개발도 마포아파트 이후 고착됐다. 주택공사는 마포아파트 1단계(1962)를 임대하고 2단계(1964)는 분양했다. 1967년에는 자금난으로 1단계도 분양으로 전환해 입주민들과 갈등을 빚었다. 그해 시작된 제2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대도시에 대단위 고층 아파트를 양산한다’는 목표를 제시했다. “이후 대한주택공사의 주택 공급 정책은 철저히 분양, 그것도 선분양으로 전환되었다. 이는 민간 사업자들의 주택 건설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마포아파트는 단독주택에서 아파트 단지로 이행하는 시기에 사업자나 입주자 모두에게 귀중한 참조적 선례가 됐다.” 마포아파트는 30년이 지나면 재건축을 추진하는 아파트의 생애 주기에도 영향을 미쳤다. 1962년 1차 완공돼 1992년 철거됐고 1994년 마포삼성아파트로 재건축됐다. 국내 최초의 아파트 재건축이었다.

대단지나 분양 같은 방식은 오늘날 다른 가능성을 상상하기 어려울 만큼 보편화됐다. 이 책은 그것이 아파트의 본질적 속성이 아니라 싸게, 많이, 빨리 짓기 위한 방법이었을 뿐임을 보여준다. 전체 주택 가운데 아파트가 62.95%(2020년 인구주택총조사)라는 수치만큼 ‘어떤’ 아파트인지 고민이 필요하다. “마포아파트 체제에서 벗어나는 일이란 불가능한 걸까?”

출판사 마티에서 20세기 한국 현대사의 중요한 사물을 조명하는 ‘케이 모던’ 시리즈의 첫 권이다. 둔촌주공아파트를 다룬 책이 지난해 먼저 나왔지만 제1편 자리를 이 책을 위해 비워뒀다. “첫 권은 ‘마포주공아파트’여야만 했다. 한국이 만들어낸 것 가운데 아파트 단지만큼 한국인의 인생 전체를 좌우하는 사물이 없고, 그 시작점에 마포주공아파트가 있으니 말이다.”(편집자 서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