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규보 선생님, 고려시대는 살 만했습니까

강민경 지음 | 푸른역사 | 388쪽 | 2만원

‘제발 작은 일자리 하나만 허락해 주십쇼!’ 그는 과거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도 미관말직 하나를 구하지 못해 벼슬을 청하는 시를 지어 올리던 ‘백수’였다. 하루가 다르게 튀어나오는 배와 빠지는 머리카락을 보며 한숨짓던 ‘동네 아저씨’였으며 절에 가면 스님이 술상을 내올 정도의 ‘술고래’이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도대체 얼마나 많은 입을 지니고 있기에 백성을 씹어 먹는가’라며 탐관오리들을 향해 일갈하며 격식을 따지지 않고 넓은 바다처럼 두루 말하는 이름 높은 문장가였다.

역사 교과서에 등장하는 ‘동명왕편과 동국이상국집의 저자’로 건조하게 기억되기 일쑤인 그 사람은 고려 무신 정권 시기의 문신 이규보(1168~1241)였다. 국립제주박물관 학예연구사인 저자는 이규보의 글을 정밀하게 분석해 그의 삶, 나아가 고려 시대 사람들의 생활을 입체적으로 짚는다. 이규보의 시에서 ‘늦어도 13세기 초에는 고려 사람들이 생선을 회 쳐서 먹을 줄 알았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게와 미나리, ‘구워 먹으면 신선이 되는 가장 빠른 길’이라는 송이버섯도 그들의 밥상에서 복원해 낸다. 한 문인을 통해 당대의 삶을 생생하게 그려낸, 재기(才氣)가 빛나는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