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극단적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
스티븐 레비츠키·대니얼 지블랫 지음|박세연 옮김|어크로스|440쪽|2만2000원
2022년 텍사스주 유밸디 초등학교 총기 난사 사건 이후 미국 언론이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미국인의 65%가 보다 엄격한 총기규제법에 찬성한다. 또 다른 설문에 따르면 60% 이상이 반자동, 혹은 공격용 무기 제조와 판매 및 소지를 금지하는 법에 찬성하며, 80% 이상이 총기 구매 과정에서 신원 조사를 의무화하는 법에 찬성한다. 그러나 이를 위한 입법 과정은 상원에서 번번이 중단되고 있다. ‘민주주의의 나라’ 미국에서 다수 국민의 의사가 입법에 반영되지 않는 까닭은 뭘까?
정치학자이자 하버드대 교수로, 전작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2018)에서 선출된 독재자가 합법적으로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사례를 파헤친 저자들은 이번 책에서 다수의 폭주를 견제한다는 명분으로 폭정을 휘두르는 소수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이들에 따르면 총기규제법 제정이 번번이 발목 잡히는 이유 중 하나는 상원이 총기 소유자들을 과잉 대표하고 있기 때문이다. 총기 소유 비율이 높은 20개 주의 인구수는 총기 소유 비율이 낮은 20개 주 인구수의 3분의 1에 불과하다. 그러나 총기 소유 비율이 높은 주들은 낮은 주들과 동등한 상원 의석을 차지하고 있다. “이러한 과잉 대표 문제는 필리버스터와 더불어 상원을 총기 규제 입법의 무덤으로 만들고 있다.” 필리버스터는 의회 내 다수파의 독주를 막기 위한 대표적인 장치이지만 왕왕 악용된다. “오늘날 우리를 위협하는 것은 해방된 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족쇄를 찬 다수’다.”
여러 사례를 통해 저자들이 궁극적으로 비판하는 ‘극단적 소수’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핵심 지지자들로 대표되는 골수 공화당원들이다. 선거에 진 정당이 평화롭게 권력을 이양하는 것이 민주주의의 핵심 덕목인데 대선 결과에 불복한 일부 트럼프 지지자들은 2021년 1월 6일 아침 국회의사당으로 행진해 난동을 부렸다. 트럼프는 오히려 이들을 독려했고, 여러 공화당 정치인은 다소 모호한 반응을 보였다. 앤드루 클라이드 하원의원이 이 사태를 “관광객의 일반적인 방문”이라 한 것이 대표적이다. 저자들은 민주주의를 지지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치적 이익을 위해 폭력이나 반민주적 극단주의에 눈을 감는 이 같은 이들을 ‘표면적으로 충직한 민주주의자들’이라 정의한다. “그들은 대부분 정장과 넥타이 차림의 주류 정치인이며, 겉으로 규칙을 준수하고, 심지어 그 규칙을 기반으로 성장한다. 그리고 민주주의에 노골적으로 반대되는 행동을 하지 않는다. 그래서 민주주의가 살해당했을 때에도, 살해 도구에서 그들의 지문이 발견되는 일은 거의 없다.”
저자들은 미국의 민주주의를 ‘표준 이하’라 평가한다. 간접선거를 미국의 민주주의를 후퇴시킨 대표적인 원인이라 파악한다. “공화당이 ‘전국 선거에서 다수를 확보하지 않고서도’ 권력을 차지하고 휘두를 수 있게 되면서, 그들은 미국 사회에서 일어나는 근본적인 변화에 적응해야 할 전반적인 동기를 상실해버렸다”면서 결국 통치의 모든 단계에서 다수에 힘을 실어줄 수 있도록 헌법적·선거적 개혁을 실행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가장 먼저 실시되어야 하는 것이 투표권 보장이다. 미국에는 헌법이나 법률이 보장하는 ‘투표권’이 존재하지 않는데, 모든 시민에게 투표권을 보장하는 헌법 수정안을 통과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시민이 18세가 되었을 때 유권자로 자동 등록되는 제도를 도입하고, 투표에 적합한 신분증을 자동으로 발급해 투표를 쉽게 만들어야 한다고도 말한다(미국에는 신분증을 관리하는 국가 차원의 시스템이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선거인단 제도를 폐지하고 전국적인 보통선거로 대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상원 필리버스터를 폐지하고 종신직인 대법원 판사에 대해 임기 제한을 규정해야 한다고 말한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성문헌법인 미국 헌법이 18세기 문헌으로 민주주의 이전 시대의 산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헌법을 신성시하는 기존 태도를 버리고 헌법 수정을 위한 비준 요건을 완화해야 한다고도 말한다.
전문 학자들이 꼼꼼하게 잘 쓴 책이지만 미국과 우리나라의 선거제도가 다르고, 현재 야당이 다수당인 우리 정치 현실과도 동떨어져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다만 ‘민주주의란 무엇인가’를 세밀하게 논하고 있어 그 점을 숙고한다면 흥미로운 독서가 될 것이다. 저자들은 법을 정치적 무기로 활용해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헌법적 강경 태도(constitutional hardball)’를 특히 비판한다. 4년 만에 대통령을 세 번 끌어내린 페루 의회를 예로 들며 “탄핵은 절대 남용해서는 안 된다. 대통령이 악명 높게, 혹은 위험하게 권력을 남용했을 경우에만 적용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도 적었다. “그러나 독재를 꿈꾸는 지도자는 헌법이 자신에게 보장한 그러한 권력을 남용하려는 유혹을 종종 느낀다.” 원제 Tyranny of the Minorit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