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일러 스위프트

테일러 스위프트 지음 | 헬레나 헌트 엮음 | 김선형 옮김 | 마음산책 | 280쪽 | 1만7000원

‘테일러 스위프트가 엘비스 프레슬리를 때려 눕혔다(Talyor Swift Beats Elvis Presley)’

올해 초 미국 포브스지가 미국 팝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35)의 빌보드 차트 1위 유지 기록(68주)이 엘비스 프레슬리(67주)를 넘어섰다는 기사에 붙인 제목이다. 지난해부터 스위프트가 펼친 5대륙 순회 공연 ‘에라스 투어’는 대중음악 콘서트 역사상 최고 수익(1조3728억원)을 거뒀다. 공연하는 지역마다 관객들이 몰려 단시간 많은 지출이 발생해 인플레이션을 자극하며 관련 경제에 큰 영향을 미친다. 이런 현상을 ‘스위프트노믹스(swiftonomics·스위프트 경제)’라고 부를 정도다.

미국 출판 편집자인 헬레나 헌트는 이 신드롬급 인기의 해답이 스위프트의 ‘육성’에 있다고 믿는다. 스위프트가 2006년 데뷔 직후부터 지난해까지 남긴 인터뷰의 주요 어록을 모았다. 자신을 엮은이로, 테일러 스위프트를 지은이로 올렸다. 스위프트 관련 국내에서 출간된 첫 책이다.

◇위기를 기회로 만든 자전적 음악

어록을 읽다 보면 스위프트의 성공은 위기를 기회로 바꾼 자전적 음악 덕분이었음이 저절로 드러난다. 스위프트의 인기가 질적으로 도약한 때로 꼽히는 2017년 앨범 ‘Reputation(평판)’의 탄생 일화가 대표적이다. 당시 스위프트는 배우 킴 카다시안과 가수 카녜이 웨스트 부부로부터 ‘거짓말쟁이’란 뜻으로 ‘뱀’이라 불리며 공개 비방과 각종 구설에 시달렸다. 스위프트는 이 앨범 수록곡 ‘Look What you made me do(네가 내게 시킨 짓을 봐)’의 뮤직비디오에 왕좌에 앉은 뱀을 등장시키며 상황을 반전시킨다. 그는 이 노래에 대해 “내 평판에 반항하며 내 삶을 살아가는 이야기”라고 설명했다. 이를 통해 ‘사이버 불링(온라인 폭력)’이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것에 대한 공감과 지지를 이끌어냈다.

지난 2일 프랑스 리옹 그루파마 경기장 단독 공연으로 6만명분의 티켓을 매진시킨 가수 테일러 스위프트. 스위프트 공연의 지역 경제 활성화 효과 덕에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 가브리엘 보릭 칠레 대통령 등 여러 국가 정상들로부터 ‘여기도 와달라’는 러브콜이 쇄도하고 있다. /게티이미지코리아

‘연쇄 열애범’이란 멸칭을 극복한 것도 스위프트가 “호신용 갑옷”이라 칭한 자전적인 작사·작곡 덕분이었다. 그는 데뷔 초부터 이어진 각종 열애 스캔들에 “실연은 앨범 몇 장의 가치가 있다”는 말로 맞섰다. “가사에 헤어진 남자 이름을 암호로 넣었다”고 직접 밝힌 2008년 발매곡 ‘Should’ve said no(거절했어야지)’처럼 옛 연애 흔적을 음악적 놀이로 치환시켰다. 이 같은 시도는 대중문화의 본질을 꿰뚫는 스위프트의 음악관과도 맞닿아 있다. “우리는 비밀 이야기를 들으면서 누군가 이게 바로 내가 겪은 일이야 하고 말해주길 바라죠.”(2019년 엘르 인터뷰)

◇늘 성공했지만, 고군분투한 스타

스위프트가 꾸준히 ‘고군분투하는 스타’를 표방한 점도 주목할 만하다. 2005년 소니/ATV 퍼블리싱과 최연소(16세) 작곡가로 계약을 맺은 그는 이듬해 데뷔 앨범 ‘Taylor Swift(테일러 스위프트)’로 단숨에 빌보드 앨범 차트 5위에 올랐다. 이후 지난 4월 낸 11집 ‘The Tortured Poets Department(고통받는 시인들의 부서)’까지 한 번도 상업적 성공을 놓친 적이 없다.

그럼에도 스위프트는 여러 차례 공개적으로 좌절을 내비치며 팬들을 결집시켰다. 9세 때부터 곡을 쓰고, 11세 때 컨트리 장르로 유명한 테네시주 내슈빌의 음반사 문을 직접 두들겼지만 “차가운 거절이 이어졌다”고 밝힌 일화가 대표적이다. 그는 2021년 소속사가 자신의 허락 없이 기존 음반들의 복제 권한을 팔아버렸을 때도 공개 비판하며 그간의 발표곡을 전부 재녹음하기 시작했다. 팬들은 ‘스위프트 버전’이라 이름 붙은 앨범들에 지지를 나타냈고, 덕분에 스위프트는 높은 차트 성적을 낼 수 있었다.

‘컨트리를 노래하는 페미니즘 가수’라는 정체성도 폭넓은 팬층을 확보한 비결이다. 스위프트는 데뷔 초부터 “내 음악 고향은 컨트리”라고 강조했다. 그는 ‘10대의 연애’ 같은 젊은 주제를 음악에 넣으며 컨트리 장르는 보수적인 백인 중장년층의 전유물이란 편견을 깼다. 컨트리 장르에 젊은 팬층을 수혈한 주역으로 환영받은 것은 물론이다. 반면 낙태의 자유와 인종차별 반대, 성소수자 커뮤니티를 공개 지지해 온 그의 정치 어록은 흑인 커뮤니티와 진보당의 지지를 얻었다.

뉴욕타임스 2008년 인터뷰는 이 대형 스타의 고백이 영리하게 계획된 것임을 깨닫게 한다. “저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가사로 쓰되 호텔방에 살고 투어 버스를 타고 다니는 얘기는 빼놓으려고 해요. 공감도의 문제가 있거든요. 옆집에 사는 여자애가 되려고 너무 노력해도 절대 그렇게 될 수 없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