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난 일을 하면 어떻게든 굴러간다
미시마 쿠니히로 지음|박동섭 옮김|유유|252쪽|1만7000원
일본의 작은 출판사 ‘미시마샤(ミシマ社)’는 괴짜 대표가 운영하는 예측 불허한 곳이다. 2006년 출판사 문을 열면서부터 그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을 걸었다. 유통사가 책의 수량을 책정해 서점에 배분하는 업계 관행을 따르지 않고, 동네 서점과 직거래 판로를 뚫었다. 서포터스 제도를 통해 회원들로부터 후원을 받고, 출판사 운영을 비롯한 온갖 잡다한 이야기를 담은 회원 전용 잡지를 발간한다. 그 회원만 연간 200여 명이 넘는다.
직원은 11명 남짓, 한 해에 내는 책은 20권 내. 작지만 명랑하고 활기차다. 그래서일까. 유명 작가들도 ‘미시마샤랑 하면 재밌을 것 같아!’라며 이곳에서 책을 낸다. 우치다 타츠루의 ‘도시 공간의 중국론’, 마스다 미리의 만화 ‘오늘의 인생’ 시리즈 같은 베스트셀러가 대표적.
그렇게 18년째 회사를 굴리는 미시마 쿠니히로(49) 대표의 에세이 ‘재미난 일을 하면 어떻게든 굴러간다’(유유)가 지난달 국내에 출간됐다. 교토에서 날아온 그를 지난 8일 서울 마포구 합정동의 한 북카페에서 만났다. 미시마샤 15주년을 기념하는 청록색 티셔츠를 입고 나타난 그는 “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달려왔다. 당이 떨어진다”며 케이크를 한 입 떠 넣었다. 그리고 인터뷰가 시작됐다.
–한국에 대한 인상은 어떤가요?
“이번이 네 번째 방문입니다. 늘 파워풀하다는 인상을 받고 갑니다. 뭔가 한국의 공기와 잘 맞는다는 느낌입니다.”
–2014년 ‘좌충우돌 출판사 분투기’(한국에서는 2016년 출간)를 내고 약 10년이 흘러 두 번째 에세이를 냈습니다. 그새 어떤 변화가 있었나요?
“그때는 막 끓어오르는 마그마 같았습니다. 잘못하면 다 녹아버릴 정도로 열정이 넘쳤습니다. 지금도 마그마는 있는데요. 녹아버리면 안 되잖아요. 마그마와 사이좋게 지내려고, 조금 컨트롤해보려고 아등바등하는 중입니다.”
–'마그마를 관리한다’라…. 이번 에세이에서 ‘매출이 늘어도 회사 규모를 키우지 않겠다’는 폭탄선언을 했습니다. 같은 맥락인가요?
“몇만 부 팔렸다, 더 팔아야지… 이런 것에 집중하면 계속 그 생각만 좇게 돼요. 지금 이 자리에서 떠드는 게 재밌잖아요? 저는 즐겁고 소중한 시간을 잃어버리고 싶지 않아요. 제가 중시하는 건 ‘보치보치(ぼちぼち)’의 자세입니다.”
–그게 뭔가요?
“ ‘그럭저럭’이란 뜻입니다. 인생이 드라마만큼 자극적이면 너무 힘들잖아요. 큰 성공은 없지만, 큰 실패도 없는 안정된 상태 속에서 재미를 느끼고 즐거움을 찾을 수 있어요.”
–미시마샤가 굴러가는 원동력은 ‘재미’인 것 같습니다.
“통상 작은 출판사는 장르를 한정하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저희는 ‘작은 종합 출판사’를 지향합니다. 그림책도 내고, 에세이도 내고, 소설도 내고, 철학서도 내고, 그밖에 사상서도 냅니다. 가보지 못한 세계로 문을 열어주는 책이라면 장르를 가리지 않아요. 하지만 공통점은 ‘재미있다’는 겁니다. ‘오모시로이(面白い·재미있다)’라는 형용사를 선호해요. 명사형을 쓰면 어쩐지 재미가 끝나버릴 것 같거든요.”
–그래서 작가들이 미시마샤에서 책을 내고 싶어 하는 걸까요?
“종이책만이 가질 수 있는 생명력, 물질성을 최대한 활용하려 합니다. 예컨대 마스다 미리의 ‘오늘의 인생’ 시리즈는 속지에 세 가지 색(분홍·초록·하늘색)을 써서 인생이 흘러가는 느낌을 줬어요. 자칫 딱딱할 수 있는 책에 귀여운 일러스트를 넣거나 작은 판형을 써서 심리적 벽을 낮추기도 하고요.”
–'한 권의 책에 혼을 담는다’는 모토를 갖고 있다면서요?
“네. 책을 낼 때는 전 직원이 동원됩니다. 영업부도 원고를 다 읽고 제목 회의에 참석해요. 책을 생명체라고 생각하면 모두가 달라붙는 게 당연하지 않나요?”
마지막 질문으로 “자신의 이름을 내건 출판사인데, 대표님이 없는 출판사도 가능할까요?”라고 묻자 동석한 미시마샤 직원 하세가와 미오씨와 수미 치하루씨가 격하게 고개를 저었다. “사실 제가 정한 건 아니고 친구에게 선물 받은 사명(社名)입니다. 그 알맹이를 채워 나가는 게 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