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불안은 죄가 없다

웬디 스즈키 지음|안젤라 센 옮김|21세기북스|340쪽|1만9800원

“퍼트리샤 하이스미스는 불안을 묘사하는 천재적인 작가죠. 그녀 덕에 공포와 불안이 다르다는 걸 알았어요.”

빔 벤더스 감독의 ‘퍼펙트 데이즈’에서 미국 범죄 소설가 퍼트리샤 하이스미스의 책 ‘11′을 구입하는 주인공에게 서점 주인은 이렇게 말한다. 공포와 불안은 어떻게 다른가? 뉴욕대 신경과학 및 심리학 교수인 저자는 동료 교수인 조셉 르두의 말을 인용해 이와 같이 설명한다. “공포는 실제로 위험이 임박한 상황일 때 발생하며, 불안은 위험할 수도 있지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는 불확실한 경우에 나타난다.” 즉 불안은 공포와는 달리 인지적 또는 상상적 위험에 대해 느끼는 감정에 더 가깝다는 것이다.

불안이란 스트레스에 대한 신체적, 심리적 반응이다. 문제는 우리 몸이 그 스트레스가 실제 상황 때문인지 머릿속으로 만들어낸 상상이나 가설 때문인지 구별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구석기 시대의 우리 조상들은 초원을 걷다 바스락거리는 소리를 듣고 긴장 상태에 이르렀다가도 사자가 근처에 없다는 걸 눈으로 확인하면 이내 평온해질 수 있었다.

저자는 "우리 뇌는 생존을 위한 방어를 중심으로 설계돼 부정적인 감정에 더 큰 의미를 부여하고 생생하게 기억하지만, 불안이 반드시 부정적일 필요는 없다"고 말한다. /게티이미지코리아

현대인의 경우엔 복잡하다. 사자 외에도 총기, 교통사고, 도시의 소음 등 수많은 스트레스 요인이 산재한다. 그런데 우리 뇌는 복잡한 형태로 변화한 현대사회에 충분히 적응하지 못해 실재하는 위협과 가상의 위협을 분별하지 못한다. 현대인의 90% 정도가 진단받지 못한 일상적 불안(everyday anxiety)에 시달리고 있는 건 뇌의 분별 능력 부족 때문이다.

불안이 뇌의 분별 능력 부족 때문에 생겨난다면 뇌의 신경가소성, 즉 주변 환경의 자극에 반응하는 뇌의 변화를 이용해 일상적 불안을 관리할 수도 있다는 게 저자가 책에서 펼치는 주장의 핵심이다. 불안도 엄연한 ‘에너지’이므로 불안을 유발하는 스트레스에 대한 반응을 ‘최적화’하면 ‘나쁜 불안’을 ‘좋은 불안’으로 치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책의 원제가 ‘Good Anxiety’인 것은 그 때문이다.

‘좋은 불안’이란 무엇인가? 불안은 보통 각성 상태를 불러일으키는데 대중 앞에서 연설할 때 떨려서 발표를 망친다면 이는 ‘나쁜 불안’이 작동한 결과다. 많은 사람 앞이라 더 몰입해 발표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낸다면 ‘좋은 불안’이 작동한 결과다.

불안은 부정적 감정이나 불편함을 통해 뇌와 신체가 우리에게 주의를 기울이라고 신호를 보내는 방식으로 감정조절력을 교란하는데, 이때 감정을 어떻게 조절하느냐가 ‘좋은 불안’과 ‘나쁜 불안’을 가른다. 감정 조절 분야 전문가인 제임스 그로스 스탠퍼드대 교수는 상황 선택, 상황 수정, 주의 전환, 인지 변화, 반응 조절 등으로 감정을 조절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 중 가장 정교한 유형의 감정 조절 전략은 ‘인지 변화’다. 입사 면접을 앞두고 불안을 느낀다면 이를 끔찍하다 생각하는 대신 자신이 잠재적 고용주에게 지원하는 회사와 업무 등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는지 보여줄 기회라 생각하라는 것이다.

최악의 시나리오를 상상하는 것도 불안 관리에 도움이 된다. 학자들은 이를 ‘부정적 대조 효과(negative contrast effect)’라고 하는데, 프레젠테이션을 앞두고 불안할 때 남들이 발표를 망치는 걸 보면 ‘나는 저거보단 낫다’는 생각과 함께 성공 기준이 낮아지면서 안심하게 되는 것이 대표적인 예다.

저자는 “큰 고통 후에는 큰 지혜가 온다”는 말이 불안 관리의 핵심과 닿아있다 말한다. 스트레스로 인한 불안을 겪다가 이를 관리해 탈출한 경험이 있는 사람은 회복탄력성을 길러 향후 찾아드는 불안에 더 잘 대처할 수 있다는 것. 학자들은 이를 ‘스트레스 예방접종’이라 부른다. 단 불안에 대한 대처법을 생애 주기에 따라 업데이트하는 것이 중요하다. 엄마에게 소리 지르는 것으로 불안을 잠재우던 세 살 어린아이가 인생의 과업 앞에서 불안할 때마다 가족에게 소리 지르는 어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이야기다.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심리학 교양서로, 책 뒤쪽엔 독자들이 불안을 점검할 수 있도록 한 워크북도 수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