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국 일본의 프로파간다

기시 도시히코 지음|정문주 옮김|타커스|280쪽|2만2000원

1894년 청일전쟁, 1904년 러일전쟁, 1914년 1차 세계대전, 1931년 만주사변, 1937년 중일전쟁, 1941년 태평양전쟁….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중반까지 일본은 대략 10년에 한 번꼴로 전쟁을 일으켰다. 근대 이후 일본처럼 전쟁에 특화된 국가는 세계사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다. 교토대 동남아시아지역연구소 교수로 20년간 동아시아의 도화상(圖畵像) 연구에 천착해 온 저자는 전쟁을 선호하는 지도층 못지않게 과도한 군사비 예산을 흔쾌히 용인하고 전쟁을 열렬하게 지지해준 여론이 ‘제국 일본’이 전쟁을 반복할 수 있었던 동력이 되었다고 본다. 저자가 말하는 ‘제국 일본’이란 메이지 23년인 1890년 11월 29일에 시행된 ‘대일본제국 헌법’ 시대의 일본으로, 1947년 5월 2일 ‘대일본제국 헌법’의 실효와 함께 무너졌다. 당시 국토는 메이지, 다이쇼, 쇼와 전기에 이르기까지 현재의 약 1.8배에 이르렀다.

저자는 각 전쟁 때마다 대중의 ‘전쟁열(熱)’을 부추긴 미디어를 분석한다. 청일전쟁 때 전쟁에 가장 먼저 열광한 이는 계급 몰락의 패배감을 씻을 기회로 받아들인 무사 계급 출신자, 그리고 전쟁을 진보를 위한 싸움으로 이해한 후쿠자와 유키치, 우치무라 간조 등의 지식인이었다. 당초 일반 서민들은 전쟁에 관심을 그다지 두지 않았는데, 이들의 관심에 불을 지핀 것이 인쇄 기술의 발달로 대량 발행된 전쟁 ‘니시키에(錦繪·다색 목판화)’였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청일전쟁 종결 후 니시키에로 유행한 고바야시 기요치카의 풍자 만화 ‘일본만세 백찬백소 청의 말로’. 전쟁에 진 청이 일본에 영토를 할양한 상황을 그린 것으로, 중국인 상인이 일본군에게 뤼순 항아리, 화위안 항아리, 펑톈 족보 등 영토 이름이 적힌 골동품을 파는 장면이 담겨 있다. /타커스

저자는 당시 니시키에와 신문이 전황을 대중에게 알리는 매체로서 각축전을 벌였는데, 니시키에가 승기를 잡았다고 분석한다. ‘신문 검열 긴급 칙령’이 공포되면서 군사 관련 신문이나 출판물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야 했지만 니시키에 업자들은 판매에 지장이 있으니 출판 여부를 신속히 결정해 달라는 요청서를 정부에 제출해 속보성을 보장받았다는 것이다. 당시 사진은 기술상의 문제로 전투 장면을 가까이서 찍지 못했기에, 대중은 니시키에를 선호했다.

‘전쟁 니시키에’의 발매 거점은 도쿄 니혼바시구 주변. 청일전쟁이 시작되고 불과 2주 만에 모든 그림책 판매상이 수십 종의 니시키에를 판매했으며, 석 장짜리 한 세트에 6전(1엔은 100전)이었던 니시키에를 팔아 1만~10만엔의 수익을 올리는 업자도 있었다. 뜨겁던 전쟁열은 청일전쟁 종결 후 반년 만에 싸늘하게 식었지만 고바야시 기요치카가 그린 전쟁 풍자화 연작 ‘일본만세 백찬백소(日本萬歲 百撰百笑)’만은 여전히 인기였다. “적국 청을 비웃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민중을 동원해 희생을 강요하는 전쟁을 풍자한 작품으로 웃음과 눈물이 내포된 희귀한 작풍이 공감을 끌어낸다.”

러일전쟁 때 미디어의 역할은 대중에게 ‘전승신화(戰勝神話)’라는 집단 기억을 심어주는 것이었다. 러·일 양국 다 승리하지 않았음에도 언론에 ‘전쟁 승리’라는 프로파간다성 정보를 흘려 여론을 조작했다. 니시키에가 시들해지면서 전황 사진 등을 이용한 엽서가 유행했다. 일본엽서회는 위문용 그림엽서 41종을 발행해 장병들에게 무료 배포했다. 일본 사회에 그림엽서 수집 열풍이 일면서 헌책방이나 그림책 판매상들이 그림엽서 판매점으로 업종을 바꾸기도 한다.

당시 언론의 역할은 어땠을까. 저자는 만주사변을 기점으로 언론사가 정부의 선전 기관으로 전락했다고 본다. 중국의 내셔널리즘을 긍정하고 만주는 중국의 일부라는 인식을 갖고 있던 아사히신문이 만주사변을 계기로 불매운동이 일어나자 위기감을 느낀 끝에 군부를 추종하는 방향으로 논조를 대전환한 것이 대표적이다. 이에 따라 만주에서 아사히 판매 부수는 1929년 1만6000부에서 1940년 7만2000부, 1942년 10만 부를 넘을 정도로 급증했다. “아사히는 향토 부대의 전투나 전사자에 관한 기사를 늘림으로써 기존에 신문과 인연이 없던 사회층도 신문을 구독하도록 기획력을 발휘한 것이다.”

이후 정부가 신문사의 용지 배급을 관리하고, 태평양전쟁 때엔 시국에 맞지 않는 보도를 했다고 판단할 경우 신문 발행을 중지하는 등 검열을 강화하면서 언론은 점점 본연의 기능을 잃고 정부의 선전 도구 역할을 하게 된다.

전쟁과 선동이라는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고 있지만, 건조하고 딱딱한 서술 방식 때문에 가독성은 다소 떨어진다. 저자는 자국이 벌인 전쟁에 대해 객관적인 관점을 유지하려 노력하면서도 ‘반성’을 잊지 않는다. 아사히신문이 2007년 4월부터 약 1년간 ‘신문과 전쟁’이라는 제목의 장기 연재 기획을 하면서 자신들의 전쟁 책임을 전면적으로 논한 것을 높이 평가하는 대목이 특히 그렇다. 연구자들뿐 아니라 한일 관계에 관심이 있는 독자들이라면 읽어볼 만한 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