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시습, 불교를 말하다

박희병 지음 | 돌베개 | 524쪽 | 3만5000원

‘옛날에는 현자가 있는 곳이라면 그곳이 설사 보잘것없을지라도 수행자들이 귀의해 총림(사원)을 이뤘는데, 지금의 승려는 명승지에 거주하며 세월만 허송하고 있다.’ ‘불법(佛法)을 무너뜨리는 것은 속유(속된 선비)가 아니라 승려들이다.’ 이렇게 현실의 불교를 신랄하게 비판한 사람은 누구였을까. 바로 생육신의 한 사람으로 알려졌으며 ‘금오신화’의 저자인 김시습(1435~1493)이 ‘임천가화(林泉佳話)’에서 한 말이었다.

김시습이 속세를 떠나 승려가 됐던 것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좀 의아해할 만하다. 그런데 서울대 명예교수인 저자는 이것이 ‘불교를 이치에 맞게 해석해 내고자 하는 집요하고도 합리적인 노력의 산물이었다’고 말한다. 김시습은 전 생애에 걸쳐 유불(儒佛)을 겸전한 인물이었고, 그것은 그가 ‘경계인’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유자의 삶과 불자의 삶 어디에도 안주할 수 없는 신산(辛酸)한 삶이었다.

김시습의 저서 ‘청한잡저’와 ‘임천가화’를 분석한 이 책은 그의 불교론에 대해 파고든다. 김시습은 불교의 교리를 비판하면서도 부처를 ‘성인’으로 간주하며 불교의 진리성을 인정했다. 그러면서 깨달음의 본질과 승려의 본분, 현실 불교에 대한 비판까지 나아갔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