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군이 테러집단 헤즈볼라를 정밀 타격하기 위해 ‘삐삐 폭탄’을 터뜨리고, 동유럽 지역에선 우크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이 항복했다는 가짜 뉴스가 끊임없이 유포되고 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이용하는 스마트폰과 삐삐, 소셜미디어가 전쟁의 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것이다.

황근(63) 선문대 교수는 최근 출간한 ‘전쟁과 평화의 커뮤니케이션: 미디어의 두 얼굴’(온샘)을 통해 고대의 봉화와 깃발 신호에서 전신, 무선통신, 인터넷, 위성통신에 이르기까지 인류가 의사소통을 위해 개발해온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본질적으로 전쟁 기술이며, 전쟁을 통해 발전해왔음을 보여준다.

평생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미디어와 커뮤니케이션을 가르쳐온 그가 왜 전쟁에 관한 책을 내놨을까. “박사 학위를 받고 육군사관학교에서 1987년부터 5년간 교수 요원으로 ‘전쟁사’를 가르쳤어요. 당시 꽤 많은 책을 읽었고 비싼 책도 많이 주문해 봤는데, 다 정리하지 못했죠. 뒤늦게 숙제를 해치운 것처럼 시원합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은 태동기부터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명분으로 이용됐다. 예컨대 전신 기술 보급 초창기인 1917년 독일 정부가 주멕시코 대사에게 보낸 “멕시코가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면 텍사스·뉴멕시코·애리조나를 다시 찾게 해주겠다”는 침머만 전보(Zimmermann Telegram)가 해킹당하면서 미국 여론이 악화됐고 윌슨 대통령은 전쟁 포고문에 서명할 수밖에 없었다. 커뮤니케이션 기술이 전쟁 발발에 직접 영향을 미친 사례. 요즘은 어떨까. “이미 전파 공격에 가짜 뉴스 공격이 일상적으로 벌어지고 있지 않나요?” 그러고 보니, 최근 열린 한미 연합훈련에서도 가짜 뉴스 등에 대응하는 ‘인지전’이 훈련 시나리오에 처음 포함됐다는 뉴스가 나왔다. 그의 말대로 커뮤니케이션은 이미 우리 앞에 그 ‘두 얼굴’을 드러내고 있었다.

'전쟁과 평화의 커뮤니케이션' 황근